佛敎 자료실

평상심으로 살아야 행복한 삶이다

지관 2008. 3. 12. 08:54
실제크기로 보기

어떤 납자는 운문스님에게 불법에 적적대의는 무엇입니까? 하니까 떡이나 먹고 가게 하셨습니다.
또 어떤 수행불자가 조주스님에게 불법의 대의는 무엇입니까? 하니까 차나 마시고 가게 하셨습니다.
조주스님이 모든 생명체에게는 불성이 있다 하니 한 불자가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물으니
조주스님이 무(無)라 하셨습니다.
시심마(是甚마) 이것이 뭣꼬! 이 물건은 무엇에 쓰이는 물건인가!
뜰 앞의 잣나무(庭前栢樹子), 마른 똥막대기, 삼베세근(麻三斤) 이런 것이 화두인 것입니다.
화두는 크게 의심하게 하는 것이며, 깨달음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부모님 몸에서 태어나기 전에 나는 무엇이었을까? (父母未生前 本來面目)하는 의심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크게 분심하여야 합니다. 분한 마음 즉 같은 조건에서 다른 사람은 깨달음을 열어
선지식이 되는데 나는 왜 못했을까? 하는 분심을 가져야 하며 또한 용맹심을 가져야 합니다.
용맹심이란 끊임없이 정진하는 것입니다. 정진하는 순간 석가라 하였습니다.
끊임없이 밀고 나가는 마음인 것, 이것이 용맹심입니다.
그리고 불교는 깨닫기 위해서는 올바른 마음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올바른 마음은 어떤 것인가?
첫째로 불보살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부처님께선 45년 동안 선각자로서 깨달음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정진하고 이렇게 수행하고 이렇게 마음을 쓰고 이렇게 행동하면
너도 나와 같이 부처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부처님은 깨달음의 길로 가도록 무지의 삶이 아닌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45년 동안 설법했고 스스로 부처를 이루라는 것이 우리의 대과제인 것입니다.

또 하나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행복한 삶이란 어떤 것이냐? 행복한 삶은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살도를 실천하는 삶,
자비를 실천하는 삶이 행복한 삶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모든 것이 무상하니 우리도 무상을 느껴
진정으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생사열반락을 얻어 해탈의 길로 가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로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의 힘은 무한하며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자신감을 갖고 있으면 못 할 것이 없습니다.
  
세 번째로 주인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란 말이 있습니다.
내가 처해 있는 곳에서는 주인의식을 갖고 주인으로 살아야 하며
내가 처해 있는 곳에서는 진실되어야 합니다.
참된 삶 즉 진실된 삶이 중요합니다.
내가 진실해야 다른 사람에게도 할 말이 있는 것입니다.
삼계(욕계, 색계, 무색계)가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만법은 유식 즉 의식 속에서 일어납니다.
우리는 항상 주인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불교는 믿음뿐 아니라 믿음과 수행을 함께 해서 나도 부처를 이루자는 것이 불교인 것입니다.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 : 평소의 생활 그대로가 도이다)란 말이 있습니다.
평상심이란 항상 생활 속에서 불교식 삶을 살아야 보다 행복한 삶이 될 것입니다.
법당뿐 아니라 길거리에서나 집에서도 부처님을 생각하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생활 속에서 항상 불교적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청정한 마음을 가져야 깨달음에 이를 수 있습니다.
  
청정심, 즉 세 가지 속이지 않는 삶을 살아야 깨달음의 길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첫째 불보살을 속이지 않아야 합니다.
둘째 일체중생을 속이지 않아야 합니다.
셋째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아야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하며 부처님을 바라볼 때 떳떳한 삶,
항상 마음에 거리낌이 없는 삶, 누구 앞에서도 정정당당한 삶,
누구에게나 떳떳한 삶, 자기 자신에게도 고개를 떨구지 않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불교는 더불어 함께 잘사는 운동입니다.
유신론도 아닌 무신론도 아닌 연기론적 입장입니다.
절대자인 어떤 분에게 우리 운명이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내 자신에 의해 삶이 결정되는 종교입니다.
불교는 인연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남의 연속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불교적인 삶은 끊임없는 인연 속에서 좋은 인연, 아름다운 인연을 만들고 유지하는 삶입니다.
또한 인연법은 인과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습니다.
결과 전에는 그럴만한 원인이 있게 마련입니다.

순현보(順現報)는 금생에 짓고 금생에 받는 업보입니다.
따라서 보다 성실하고 사치와 허영을 삼가고 분수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순생보(順生報)는 전생에 진 죄는 금생에 갚고 금생에 진 죄는 후생에 받습니다.
순후보(順後報)는 금생에 진 죄는 삼생 이후에 받습니다.
  
불교는 자기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개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쁜 일이 있으면 더 좋은 일을 함으로써 악운을 소멸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쁜 일을 하면 참회를 해야 합니다.
참회를 함으로써 업장이 소멸되며 업장이 소멸되면 하는 일이 모두 이루어집니다.
  
생활 속의 수행법은 기도입니다. 기도로서 시작하고 기도로서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오늘 하루는 이렇게 잘 살겠습니다’ 서원하고
저녁에는 몸으로 입으로 마음으로 잘못했으니 참회를 해야 합니다.
아침에 서원하고 저녁에는 참회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불교는 믿음으로서의 종교뿐만 아니라 수행을 통하여 참회하고
다시는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종교인 것입니다.

'佛敎 자료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덕(福德)  (0) 2008.03.26
안수정등(岸樹井藤)  (0) 2008.03.21
해탈(解脫)  (0) 2008.03.12
중도(中道)  (0) 2008.03.12
죄무자성(罪無自性)  (0) 2008.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