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부처님은 인간의 몸 그대로 자신의 어머니 마야 부인이 계신 천상의 세계 도솔천에서 설법을 하신 후 돌아오신 적이 있습니다. 이때 세상에서 처음 부처님을 마중 나와 뵌 사람이 십대 제자 중 한 분인 아난존자였습니다. 아난존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촌 형님뻘 되는 나이지만, 부처님을 공경하여 평생을 가까이서 모신 분입니다.
아난은 의기양양하게 부처님께 말합니다. "부처님, 제가 제일 처음으로 부처님을 뵙는 거 맞지요?"
그러나 부처님은 코웃음치듯이 답하십니다. "이런 딱한 놈 보았나, 나를 처음 마중 나온 사람은 네가 아니라 숲속에서 아란야행을 닦고 있는 수보리니라."
칭찬은커녕 무안을 당한 아난은 놀라서 다시 여쭈어 봅니다. "아니 부처님, 지금 저는 부처님의 모습을 분명히 보고 있고 수보리는 숲에 앉아 있는데,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때 부처님이 말씀하십니다. "지금 네가 보고 있는 것은 나의 몸뚱이일 뿐이지 진정한 여래의 모습이 아니다. 여래의 모습은 색신(色身)이 아니라 법(法)에 있다. 수보리는 비록 숲에 있지만 그는 선정에 들어 공(空)을 관하고 있느니라. 그래서 네가 아니라 수보리가 나를 처음 맞이한 것이다."
바로 이것입니다. 금강경의 유명한 '사구게'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凡所有相(범소유상) 皆是虛妄(개시허망) 若見諸相非相(약견제상비상) 卽見如來(즉견여래) 무릇 있는바 상은 다 헛되고 망령된 것이니 만약 모든 상이 상아님을 보면 곧바로 진실한 여래를 보게 된다
무릇 모든 모양이나 현상에 집착함은 모두 다 허망하여 사라지거나 잘못 인식한 것이니 모든 모양과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덧없음을 알 때 그것이 곧 불법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아란야행'이나 '공'이나 '세간' 따위 단어들은 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 두셔야 하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즉 불교란 이렇듯 눈으로 확인되고 생각으로 옳다고 하는 것에서조차도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하는 종교인데, 일부에서는 불교의 이러한 근본 뜻을 심히 왜곡하여 '불교는 우상 숭배의 종교이고, 미신이다.' 라고 단정 지어 버립니다.
* 아란야행 : 12두타행의 하나. 비구가 항상 아란야에 거(居)하고 밖에 주(住)하지 않는 것. 아란야 : 사원(寺院)의 총명이며 비구의 수행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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