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럽고 바쁘고 긴장된 시간 속에서 얼마나 지루했던 장마를 보냈는지 모처럼 빼꼼히 나온 해를 보며 휴식을 취해봅니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를 가르는 멀리서 들려오는 녹음 속의 산새 소리가 평화롭습니다. 더욱 낮아지기 위해 더욱 조용해지기 위해 라디오 음악 소리도 끄고 창 밖 자귀나무에 날아든 산새소리에 눈을 감습니다.
이 자유 이 적막 그리고 이 만족 잠시라도 고맙습니다.
이제 누가 뭐래도 가을입니다. 이른 봄, 겨울 내내 황량했던 연밭을 바라보며 언제나 잎이 날까 이른 아침마다 들여다보고 연두색이 삐죽 고개 내밀 때마다 신기해하고 그러다가 온 들판에 초록 연잎들이 덮어질 때는 제 마음에 먼저 연꽃이 피고 찬란한 여름을 맞았었는데....
아침저녁으로 선득선득한 바람이 부니 커다란 연잎에 구멍이 나듯 제 가슴 한 켠도 알 수 없이 시리기만 합니다.
아직도 늦둥이 연꽃 몇몇은 푸른 하늘 높이 고개를 쳐들고 온 몸으로 햇빛을 받아들이는데....
일찍 피었던 꽃은 벌써 알알이 씨앗을 여물게 하느라 잎새 아래 지나는 햇빛마저도 놓치지 않습니다.
스러진 연잎들은 다시 패잔병처럼 누워 길고 뜨거웠던 여름을 장렬히 마치고 흙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백련향기 물씬 풍기는 백련지에서 연밥, 연잎을 채취하면서 저도 이제 조용하고 넉넉한 가을을 맞고 싶습니다.
백화도량 부용사 송암/지관 합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