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육신의 몸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겠느냐?
볼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육신의 몸으로써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몸은 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길,
인연따라 화합된 모든 형상들은 모두 다 거짓이고 헛된 것이니,
만약 모든 형상이 형상 아님을 알면 바로 여래의 참 모습 볼 수 있으리.
------------------------------------여리실견분 (진여의 이치를 실상으로 봄)
해설
여리(如理)'라고 하는 것은 진여의 도리, 부처님의 참 도리를 말합니다.
실견(實見)'은 참되게 보고 법답게 보라는 뜻입니다.
모든 만상을 껍데기에 쏠려서 보는 것이 아니라
진여의 도리대로 바르게 보아야 된다는 것이 여리실견분의 가르침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형상이 참모습인 줄 알고 집착하며 어리석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형상도 고정된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 모든 존재는 인연으로 인해 잠시 형상을 지니고 있다가
인연이 다하면 사라지고 마는 허망한 것입니다.
일체 모든 형상이 참모습이 아닌 것을 바로 보게 되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만상을 참되고 바르게 보려면 조용히 침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원래 만상은 말 없는 가운데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만상이 생성된 이면의 세계를 적정(寂靜)의 세계라고 합니다.
현대인들은 도시의 혼잡과 소음에 찌들어 살다 보니
대우주의 근본 바탕인 고요함을 까맣게 잊고 있습니다.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히고 모든 혼잡과 소음을 씻어내
형상이 아닌 본질의 세계를 바로 볼 수 있는 능력을 일깨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상(身相)'이란 부처님의 육신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부처님의 거룩한 형상을 보고 부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삼십이상 팔십종호의 훌륭한 모습을 갖추신 부처님의 육신도 지수화풍
사대가 모여 이루어진 것으로 인연이 다하면 언젠가는 허물어질 허망한 것입니다.
부처님의 형상은 다만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한 방편일 뿐 부처님의 참모습은 아닙니다.
부처님의 실체는 육신의 몸이 아니라 진리의 몸인 법신입니다.
부처님을 보고자 하는 사람은 형상이 아니라 마음의 몸인 법신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경전에 나오는 비(非) 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의 뜻으로 쓰이기도 하고 마음의 세계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비신을 마음의 몸으로 해석 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거룩한 모습이 아니라 법신을 통해 부처님을 보아야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박칼리라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큰 병을 얻어 회복할 가망이 없게 된 박칼리는 죽기 전에 부처님을 꼭 한 번 뵙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사정을 알게 된 부처님은 병석에 누운 제자를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박칼리는 부처님이 오신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억지로 몸을 일으켜 부처님께 예배를 드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제자를 꾸짖으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대와 똑같이 늙고 쓰러져 버릴 나의 육신에 예배를 한다고 해서
무슨 공덕이 되겠느냐?
그동안 여래라는 존재를 이 육신으로 알았더냐?
법을 보는 사람은 나를 보고,나를 보는 사람은 법을 보리라."
그 말씀을 들은 박칼리는 형상을 가진 모든 존재는 덧없는 것임을 크게 깨달아
지혜의 눈을 떴다고 합니다.
사구게는 경전의 내용을 네 구절로 된 게송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금강경 전편에 걸쳐 사구게만이라도 받아 지녀 읽고 외워
남에게 설해주는 공덕이 크다는 내용이 여러 번 나옵니다.
그만큼 경전을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중요한 구절입니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라는 구절은
금강경의 핵심을 담은 유명한 사구게 중 하나입니다.
'모든 형상은 다 허망한 것이니
형상을 형상 아닌 것으로 본다면 곧 여래를 본다' 는 내용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일체 만상은 모두 허망한 것입니다.
끊임없이 변하고 사라지게 되어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영원한 줄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애지중지 아끼며 소중하게 여기는 우리의 몸도 머지않은 장래에 다 늙게 되어 있습니다.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곱던 피부는 쭈글쭈글해지고 비단결 같던 검은 머리도 점점 하얗게 변해갑니다.
항상하지 않은 것에 집착하는 것은 고통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인생을 잘 살았다고 자부하는 사람도 생을 마감할 때는
허망하다고 말하며 인생 일장춘몽이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모든 현상이 참된 것이 아닌 줄 알고 본질을 바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는
"초저녁에 타오르는 춧불과 자정에 타오르는 촛불과 새벽에 타오르는 촛불이 같으냐" 고
제자에게 물어 보셨습니다.
촛불이 타면서 껍데기인 겉모양은 변했지만
속 내용인 촛불이라는 속성은 그대로임을 깨우쳐주기 위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만상의 참모습을 바르게 보려면 끊임없이 수행정진하여
마음의 눈과 귀가 열려 있어야 됩니다.
우리는 육신의 눈과 귀밖에 열려 있지 않으므로
만상의 이치를 바르게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치는 껍데기에 드러나 있는 것이 아니라 밑바탕에 깊숙이 들어 있습니다.
만상의 이면에 있는 진면목 즉 마음의 세계를 보게 되면
그 자리에서 여래를 보게 됩니다.
존재의 참모습을 보는 지혜를 얻을 때 비로소 모든 애착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영원한 진리의 세계로 이끌 수 있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 외에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무거운 삶의 무게가 나를 짓누른다 하더라도
여여하게 부처님 전에 나와서 마음을 세척하고 아픔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영원히 행복한 사람도 없고 영원히 불행한 사람도 없습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마음 가운데 부처님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옮긴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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