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심이 매우 깊었던 일타스님의 부모님은 자식들을 낳기 위해 정성으로 불공을 드렸는데 시골에서 농사를 지을 때도 재계(齋戒)하는 마음으로 임하셨습니다. 논밭의 거름으로는 대변을 주지 않고 ‘관세음보살’과 ‘대방광불화엄경’을 부르면서 고운 풀만 베어다가 논에 넣었고 손으로 직접 벼를 훑어 방아를 찧었습니다. 그리고 스님의 아버지께서는 직접 만든 무명베 자루에 쌀을 한 말 담고 깨끗한 무명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그 쌀을 마곡사 대원암까지 짊어지고 가서 불공을 드렸습니다. 집에서 절까지는 80리길인데 그 먼 길을 아들낳기 위한 불공을 드리러 다녔던 것입니다.
한 번은 생남불공(生男佛供)을 드리기 위해 평소와 같이 쌀을 짊어지고 마곡사 대원암을 향하였는데 그날따라 마침 배가 사르르 아픈 것이 자꾸만 방귀가 나오려 하는 것이었습니다. 억지로 참으며 가다가 대원암을 10리 남겨 놓은 약 70리 되는 지점에서 고랑을 건너다 그만 방귀을 뀌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아! 내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러 가다가 방귀를 뀌다니... 방귀 기운은 이미 쌀로 올라갔을 것이 아닌가?”
방귀 기운이 섞인 쌀로는 공양을 올릴 수 없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그 쌀을 도로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쌀을 부어 버리고 쌀을 새로 찧어 새 자루에 넣은 다음 다시 80리 길을 걸어 불공을 드리러 가셨다고 합니다. 그 끝에 일타스님을 낳으셨으니 부모님의 정성과 은혜를 무어라고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재계는 정성이요, 불공은 나의 정성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내 불공 내가 드리고, 내 정성 내가 드리고, 내 기도 내가 하고,
내 축원 내가 해야 참 불공, 참 축원입니다.
남이나 스님네가 대신해 주는 것은 모두가 반쪽입니다.
자기의 정성을 다할 때 부처님의 광명이 환히 비쳐올 뿐 아니라
지혜가 샘솟고 무명업장으로부터 벗어날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금용 대불모 불사도량 부용사 현산 지관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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