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 자료실

어리석음은 가장 강렬한 독

지관 2012. 3. 21. 07:51

 

 

삼독(三毒)이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3가지 번뇌인 탐욕(貪慾), 진에(瞋恚), 우치(愚痴)를 말합니다. 탐욕은 욕심내는 마음을 가리키고, 진에는 화내는 마음을 말하며, 우치는 어리석은 마음을 뜻합니다.

이 중에 가장 고약한 것은 우치입니다. 욕심내는 마음과 화내는 마음은 의외로 다스리기 쉽습니다. 더군다나 외부적인 환경이 그 마음을 다스려 주기도 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어리석음은 실은 무명(無明)을 의미합니다.

12연기(緣起)의 처음이 무명에서 시작되는데, 무명, 곧 '밝음이 없다'는 뜻입니다. 빛은 곧 밝음이니 밝음이 없음, 즉 무명은 '깨닫지 못한 모든 마음'을 뜻하게 됩니다. 무명은 단독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다시 풀이하면 '자기의 본래의 성품을 보지 못함'이 무명이란 뜻입니다.

 

그럼 본래의 성품은 무엇이냐 그게 바로 불성(佛性)이란 말입니다.

'나는 부처다'라는 밝음의 확신(明)을 갖지 못하고, 밝음의 확신이 없으니(無明) 어리석은 중생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낮에 방안에 촛불 하나를 켜 보십시오. 당연히 아무 표시도 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밤이 되어 온 세상이 어두워져도(無明: 밝음이 없음) 방안은 촛불의 밝음(明: 나의 본래 성품, 즉 불성)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만약 무명이 홀로 존재할 수 있다면 방 안은 그대로 어두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무명 자체는 무자성(無自性)이 성립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삼독의 마지막인 우치, 즉 어리석음은 단순히 알아야 할 것을 몰라서 어리석다는 뜻도 있지만, 몰라도 될 것을 알고 그것에 집착하는 것도 포함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마지막 우치가 원인이 되어 앞의 두 가지 탐욕과 진에도 생긴다는 것입니다.

 

삼독과 무명을 아주 적나라하게 표현한 인도 전래의 설화가 있습니다.

옛날 어떤 사람이 광야를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때 크고 사나운 코끼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미친 듯이 달렸으나 의지할 곳이 없었습니다.

때마침 언덕 위에 있는 우물을 발견한 그는 곧 우물 속으로 드리워진 나무뿌리를 잡고 우물 속으로 들어가 숨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매달려 있는 나무뿌리를 흰 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 가며 이빨로 갉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물의 네 벽에는 네 마리 독사가 그 사람을 물려고 했습니다. 또 이 우물 밑에는 큰 독룡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옆에 있는 네 마리 독사와 아래 있는 독룡이 무서워서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매달려 있는 나무뿌리는 뽑힐 듯이 흔들리고 그 때 나무에 매달려 있는 벌집에서 꿀 세 방울이 그의 입속으로 떨어졌습니다. 그 때 나무가 움직여 벌집을 무너뜨렸습니다. 벌들이 날아와서 그 사람을 쏘았습니다.

그런데 또 들에 불이 일어나 그가 매달려 있는 나무를 태웠습니다.

 

광야는 생사(生死)를 비유하며, 그 남자는 범부(凡夫)를 비유하며, 코끼리는 무상(無常)을 비유하며, 언덕 위의 우물은 사람의 몸을, 나무뿌리는 사람의 목숨을 비유합니다. 흰 쥐와 검은 쥐는 밤과 낮을 비유하고, 그 쥐들이 나무뿌리를 갉는 것은 사람의 목숨이 순간순간 줄어드는 것을 비유합니다.

네 마리 독사는 사대(四大)를, 꿈은 오욕(五慾)을 비유하며, 그를 쏜 벌들은 나쁜 생각과 견해를 비유한 것입니다. 또 들불이 타는 것은 늙음을 비유하고, 아래 있는 독룡은 죽음을 비유한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게송을 읽어 보십시오.

그래도 마음에 무엇인가 와 닿지 않으신다면 아주 강렬한 독이 이미 몸 깊숙히 퍼졌다는 신호입니다.

 

                                         금용 대불모 불사도량   부용사   현산 지관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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