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 자료실

함께 사는 세상

지관 2011. 11. 3. 17:46

                

산속에 있는 절에 가면 제일 먼저 지나는 문 중에 불이문(不二門)이 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불이법(不二法)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불교에서는‘불이(不二)’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데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불이(不二)’라고 하는 것은 ‘둘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즉 너와 나, 친구와 원수, 좋은 것과 나쁜 것, 중생과 부처, 이론과 실체, 남자와 여자, 일등과 꼴등, 선생님과 학생, 밝음과 어두움, 성스러움과 추함, 더러움과 깨끗함, 부모와 자식 등 이런 것들이 다 따로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가르침입니다.

언뜻 들어보면 분명히 정반대인 것을 ‘서로 다르지 않고 둘이 아니다’라고 하니까 말도 되지 않는 황당한 소리처럼 들릴 것입니다. 그렇지만 잘 생각해 보면 맞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친구와 원수가 둘이 아니다’하는 것으로 생각해 봅시다. 친구라는 것은 잘 이해하고 좋아하는 사이를 말하는 것이고, 원수는 서로 싫어하고 이해도 되지 않거나 이해하기조차 싫은 사이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친구는 아주 좋은 관계이고, 원수는 아주 나쁜 관계이기 때문에 완전히 다른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친구가 원수이기도 하고 원수가 친구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친구와 원수는 둘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친구와 원수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마음을 내어 관계를 만드는 것뿐입니다. 내가 좋아하면 친구가 되고 내가 그를 싫어하고 미워하면 원수가 되는 셈입니다. 이처럼 불이법을 잘 알면 어떤 관계든지 좋은 관계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본래 따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는 것이므로 내 마음을 잘 쓰면 되는 것입니다.

 

나와 남을 구분하고 좋은 것과 싫은 것 사이에 굵은 선을 그어서 차별을 할 때 서로 견주면서 다투어야 하는 부담감이 생겨서 마음은 불안해지고 볼 때마다, 만날 때마다, 생각할 때마다 괴로움만 쌓일 뿐입니다.

그 경계선이 다만 내 마음에서 지어낸 것인 줄 알아서 본래 둘이 아닌 도리를 밝힐 수 있다면 어떤 다툼이나 견줌도 없이 서로 화합하고 도울 수 있게 됩니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라 ‘우리’라는 하나임을 알 때 견줌과 다툼은 없어지고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 마음이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내 몸처럼 아끼고 사랑할 때 우리 사회는 살기 좋은 정토(淨土)가 될 것입니다.

 

나만 홀로 떨어져서 세상에 던져진 것이 아니라 내가 있음으로 세상이 되고 세상이 있음으로 내가 있는 이 도리를 알아야 합니다.

 

바로 선을 긋고 차별할 때 불행은 더해지고 선을 없애고 어우러질 때 모두 함께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

내가 시선을 두고 바라보는 사람이나 사물, 혹은 마음을 어떤 차별을 두냐에 따라서 변하는 마음의 이치를 잘 살피어 모두가 함께 어우러지는 도반이 되어 어렵고 어려운 바라밀다(波羅蜜多 태어나고 죽는 현실의 괴로움에서 번뇌와 고통이 없는 경지인 피안으로 건넌다는 뜻으로, 열반에 이르고자 하는 보살의 수행)를 향하여 어깨를 같이 하고 갈 수 있는 그런 포근하고 넉넉하고 자애스럽고 자비로운 나날이 됩시다.

 

                                             금용 대불모 불사도량    부용사    현산 지관  합장

'佛敎 자료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도하는 자의 마음가짐과 행동  (0) 2012.01.02
마음씨 좋은 사람  (0) 2011.11.06
불교를 만난 것은 최고의 행운   (0) 2011.10.12
한산(寒山)과 습득(拾得)   (0) 2011.08.05
부(富)를 부르는 마음   (0) 2011.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