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 자료실

마조(馬祖)문하 뛰어난 세 제자 (2)

지관 2017. 2. 7. 11:16

서당 지장(西堂 智藏 735~814 南嶽下)

당나라 때의 건화(虔化, 江西) 출신 선승(禪僧)으로 속성(俗姓)은 요()씨다.

8살 때 출가하여 25살 때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불적암(佛迹巖)에서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을 뵙고 심인(心印)과 가사(袈裟)를 받아 그 법을 이었다. 마조도일이 입적한 뒤 정원(貞元) 7(791) 사람들의 요청으로 개당(開堂)하고, 나중에 건주(虔州) 서당(西堂)에 주석(住錫)하면서 마조의 선풍(禪風)을 널리 떨쳤다.

백장회해(百丈懷海), 남전보원(南泉普願)과 함께 마조 문하 삼대사(三大士)로 불렸으며 원화(元和) 9년 입적했고, 세수(世壽) 80세에 법랍(法臘) 55세다. 목종(穆宗)이 대각선사(大覺禪師)란 시호를 내렸다.

사법제자(嗣法弟子)에 건주 처미(虔州處微)와 신라승(新羅僧) 계림 도의(鷄林道義), 본여(本如), 홍섭(洪涉), 혜철(慧徹) 등이 있다. 스님의 선풍은 신라에서 흥성했다.

제자 가운데 도의는 귀국한 뒤 가지산(迦智山)에 있으면서 파()를 만들었고, 홍섭도 실상사(實相寺)에서 파를 만들었는데, 모두 조선 조계종(朝鮮曹溪宗) 구산(九山)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하루는 서당선사가 스승 마조의 심부름으로 혜충국사에게 편지를 전하게 되었다.                    

길을 가다 천사(天使, 황제의 사자)를 만나 억지로 공양을 하자고 하여 같이 공양을 하고 있는데 당나귀가 히힝하고 울었다. 천사가 서당선사를 놀려 주려고 나귀를 보며 말했다.

예끼, 이놈의 중이선사가 천사를 바로 보니 손가락으로 나귀를 가리키고 있다.

이에 서당 선사는 천사를 바로 보며 말했다.

이놈의 당나귀가천사는 꼼짝도 못했다.

서당 선사가 혜충 국사의 처소에 이르자 국사가 물었다.

그대 스승은 어떤 법을 가르쳐 주던가?

서당 선사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서 서니 혜충 국사가 다시 물었다.

그것뿐인가? 아니면 또 있는가서당 선사는 말없이 다시 동쪽으로 가서 섰다.

그러자 혜충 국사가 말했다.

그것은 마조의 방법이다. 그대의 방법은 무엇인가?

서당 선사가 입을 열었다. 이미 다 아뢰었습니다.

얼마 후에 경산 국일선사에게도 글을 전하였다. 이때 대장군인 노사공이 대적을 초청하여 담당 고을에 머물게 함으로써 장차 성대한 교화를 기약하려고 하였다. 대사가 고을로 돌아오니 대적이 마납가사를 그에게 주면서 배우는 자들로 하여금 가까이하게 하였다.

어떤 스님이 마조에게 물었다.

청컨대 화상께서 네 구절을 여의고 백 가지 부정을 끊은 채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을 곧바로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마조가 대답했다. 나는 오늘 생각이 없으니 그대는 지장에게 가서 물어라.

그 스님이 대사에게 와서 물으니 대사가 대답했다. 그대는 왜 화상께 묻지 않는가?

그 스님이 말했다. 화상께서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상좌에게 물어라고 하셨습니다.

대사가 손으로 머리를 만지면서 말했다. 오늘은 머리가 아프니 회해 사형에게 가서 물어라.

그 스님이 다시 회해에게 가서 물으니 회해가 말했다. 나는 그러한 것에 대해 도리어 알지 못한다. 그 스님이 마조에게 가서 이야기하니, 마조가 말했다.

지장의 머리는 희고, 회해의 머리는 검다. 

마조가 어느 날 대사에게 물었다. 그대는 왜 경전을 보지 않는가?

대사가 말했다. 경전인들 어찌 다르겠습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그대가 뒷날 남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저는 병이 나서 스스로를 감당하기도 급급한데, 감히 남을 위하라고 하십니까?

그대가 말년에는 세상에서 흥기하리라.

대사는 마조가 열반에 든 뒤 정원 7년에 대중의 청에 의하여 개당을 하였다.

상서인 이고라는 이가 일찍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마대사가 어떤 설법을 하였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대사께서는 어떤 때는 마음이 곧 부처라 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마음도 부처도 아니라고 하셨소.

이고가 말하였다. 모두가 그쯤이구나. 그리고 다시 대사에게 와서 물었다.

마대사께서 무어라고 설법하셨습니까?

대사가 이고를 불렀다. 이고가 대답하자, 대사가 말했다. 북과 고동 소리가 나는구나.

제  공선사가 대사에게 말했다. 해가 너무 일찍 뜨는군요.

대사가 말했다. 바로 이때이다.

대사가 서당사에 살기 시작한 뒤에 어떤 속인 선비가 와서 물었다.

천당과 지옥이 있습니까?   대사가 말했다있다.

불보법보승보는 있습니까있다.

그밖에 여러 가지를 물었으나 모두 있다고 대답했다.

화상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잘못이 아닙니까?

그대가 일찍이 어떤 존숙을 만난 적이 있었는가? 제가 경산화상을 뵙고 왔습니다.

경산이 그대에게 무어라고 하던가?  일체가 모두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대에게 아내가 있는가있습니다.

경산화상도 아내가 있는가없습니다.

경산화상이 없다고 한 것이 맞는구나속인 선비가 절하고 물러갔다.


이고:마조대사께서 어떤 가르침을 주셨습니까.

서당:이고야! 

이고:네. 

서당:이게 바로 북과 피리가 서로 상응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니라.

"서당고각" 이라는 화두를 낳은 선문답이다. 등장 인물은 西堂智藏선사 와 서당선사가 개산한 강서성 감현 공공산 寶華禪寺(옛이름 西山 堂)의 開門제자인 상서(장관) 이고다. 李고는 서당을 참문하기에 앞서 먼저 한 중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다. 중은 대답하기를 "馬대사께서는 어떤 사람에겐 "마음이 곧 부처(卽心是佛)" 라 했다가, 어떤 사람에겐 "마음도 부처도 아니다(非心非佛)" 라고 말씀하십니다" 고 했다. 이고는 중의 대답을 듣고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서당선사한테로 가서 같은 질문을 했다. 따라서 이 공안은 같은 질문이지만 한 중과 서당지장선사에게 각각 물었기 때문에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대강의 의미만 살펴보면 공안의 포인트는 서당이 "이고야!" 하는 부름과 이고의 대답 "네" 란 비유로 마음과 부처의 구현을 드러내 보인 것이다.

악대에서 북을 치면 피리가 뒤따르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고 연주의 법칙이며 진리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름을 부르면 "네" 하고 대답하는 응답하는게 일상 생활 속 의 自然法爾다.

부름에 대한 응답은 바로 심성의 움직임이 아닌가. 인간의 심성(자성본체)은 이처럼 자연스럽게 순리대로 작용한다. 내가 너를 부르면 너는 "네" 하고 대답하듯이 말이다. 이렇다면 "부처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다" 라고 해도 좋고, "마음이 곧 부처다" 라고 해도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마음의 본체는 이미 긍정과 부정을 넘어서 있기 때문이다.


불생불멸이고 영구불변인 자성본체(마음)는 부름이 있으면 응답을 하듯이 언제나 기(機)에 따라 그 본연의 작용을 다한다. 또 마음과 부처는 모두 자신의  심신안에 있으므로 물음과 응답식의 관계로 구체화돼 나타난다. 서당지장선사가 마조의 "즉심시불" 과 "비심비불" 을 멋지게 풀어낸 비유다.

대사가 원화 948일에 열반에 드니 수명은 80세이고 법랍은 55세였다.

헌종이 대선교선사라는 시호를 하사하고, 탑호를 원화증진이라 하였다.

그 뒤 목종 때에 대각선사라는 시호를 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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