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장애 가운데에서 보리도를 얻은 예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보시태자(布施太子)이야기, 설산에서 반구절의 게송을 듣기 위해 나무 위로 올라가 나찰을 향해 몸을 던졌던 설산동자(雪山童子) 이야기, 가리왕에게 팔다리와 코가 잘리면서도 화를 내거나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던 인욕선인(忍辱仙人) 이야기 등 무수히 많습니다.
그와 같은 시련이 있을 때마다 부처님께서는 더 높고 깊은 도의 경계로 향상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생명을 잃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모습대로, 나아가 천인들의 공양과 귀의를 받는 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수행 끝에 마침내 ‘석가모니’라는 이름으로 부처가 되었지만 부처가 된 다음에도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고향인 카필라국의 멸망, 3개월 안거기간 동안 말먹이용 보리를 공양하며 지낸 일, 나아가 사람으로 인한 시련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살인마 앙굴마라와 부처님의 사촌인 제바달다의 반역입니다.
이처럼 부처님에게도 많은 시련과 장애가 찾아왔습니다. 장애가 왔을 때 모름지기 비우십시오. 막혔을 때 비우십시오. 더 이상 거짓 ‘나’의 공포에 사로잡혀 살지 말고 ‘나’를 비우십시오. ‘나’를 비우는 거기에 해탈이 있습니다. 이기심, 욕심, 어리석음 등의 거짓 ‘나’를 비울 때 자비, 지혜, 영광, 행복, 환희가 충만된 참 ‘나’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통함을 구하면 오히려 막히게 되고, 거짓 ‘나’를 비우면 거짓 ‘나’ 때문에 생겨났던 장애가 모두 오묘한 경지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실로 불교는 인생살이에 있어 우리가 이렇게 살 것을 일관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인생살이의 고난을 향상과 해탈의 발판으로 삼을 것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보다 먼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그렇게 사셨습니다. 도를 닦을 때나 부처가 되신 다음에도 그렇게 사셨습니다.
우리의 지금 한 생각, 그 한 생각이 현재를 낳고 미래를 창조합니다. 부디 올바로 보고(正見), 올바로 생각하여(正思) 헛된 욕망을 제거해 버립시다. 도는 결코 욕심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살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진정으로 도를 구하고 값진 인생살이를 원한다면
부질없는 욕망들을 뚝 잘라버리고, 진리, 곧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평화로운 마음으로 중생을 살리고 이롭게 하는 일에 몰두해야 합니다. 또한 이렇게 살 때 모든 허물은 스스로 녹아나고 장애는 저절로 사라지며 매듭이 풀리는 것입니다. 성불하십시오. 나무 관세음보살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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