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신라 땅 백월산의 선천촌에 두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 하나는 '노힐부득'이라 했고, 또 하나는 '달달박박'이라 하였다.
이 둘은 절친한 사이로 20세에 출가하여 부득은 회진암에 살았는데, 이곳을 양사(지금 회진동에 옛 절터가 있다)라고도 했다. 박박은 유리광사(지금 이산(梨山) 위에 절터가 있다)에 살았다. 이들은 모두 처자를 데리고 와서 살면서 산업을 경영하고 서로 왕래하였다. 그러나 정신을 수양하고 편안히 마음을 길러 속세를 떠날 마음을 잠시도 버리지 않았다. 그들은 몸과 세상의 무상함을 느껴 서로 말했다.
"기름진 밭과 풍년 든 해는 참으로 좋은 것이지만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마음대로 생기고 자연히 배부르고 따뜻함을 얻는 것만 못하다. 또 부녀와 집이 참으로 좋으나 연지화장에서 여러 부처가 앵무새나 공작새와 함께 놀면서 서로 즐기는 것만 못하다.
더구나 불도(佛道)를 배우면 응당 부처가 되고, 참된 것을 닦으면 반드시 참된 것을 얻는 데 있어서랴.
지금 우리들은 이미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으니 마땅히 몸에 얽매어 있는 것을 벗어 버리고 무상의 도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찌 이 풍진 속에 파묻혀 세속 무리들과 같이 지내서야 되겠는가."
이들은 드디어 인간 세상을 떠나 장차 깊은 골짜기에 숨으려 했다. 어느 날 밤 꿈에 부처님의 양 미간 사이에서 나온 빛이 서쪽에서 오더니 금빛 팔이 내려와 두 사람의 이마를 쓰다듬어 주었다. 꿈에서 깨어 그 얘기를 하니 두 사람의 말이 똑같으므로 이들은 모두 한참 동안 감탄하다가 드디어 백월산 무등곡(지금의 남수동)으로 들어갔다.
이들은 각기 북쪽과 동쪽의 암자에 살면서 부득은 미륵불을 성심껏 구했고, 박박은 미타불을 갈구하며 염송했다. 3년이 못되어 경룡(景龍) 3년 기유(709년) 4월 8일은 성덕왕 즉위 8년이다. 해는 저물어 가는데 나이 스무 살 가깝고 얼굴이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 난초 향기와 사향 냄새를 풍기면서 갑자기 박박의 암자에 왔다. 그녀는 자고 가기를 청하면서 글을 지어 바쳤다.
갈 길 더딘데 해는 떨어져 모든 산이 어둡고
길은 막히고 성은 멀어 인가도 아득하네.
오늘은 이 암자에서 자려 하오니
자비스러운 스님은 노하지 마오.
박박은 말했다. "절은 깨끗해야 하는 것이니 그대가 가까이 올 곳이 아니오. 어서 다른 데로 가고 여기에서 지체하지 마시오."하고는 문을 닫고 들어갔다.
여인은 부득의 암자로 가서 전과 같이 청하니 부득이 말했다.
"그대는 이 밤중에 어디서 왔는가."
낭자가 대답했다. "맑기가 태허(太虛)와 같은데 어찌 오고 가는 것이 있겠습니까. 다만 어진 선배의 바라는 뜻이 깊고 덕행이 높고 굳다는 말을 듣고 장차 도와서 보리를 이루고자 해서일 뿐입니다."
그리고는 게(偈) 하나를 주었다.
해 저문 깊은 산길에
가도 가도 인가는 보이지 않네.
대나무와 소나무 그늘은 그윽하기만 하고
시내와 골짜기에 물소리 더욱 새로워라.
길 잃어 잘 곳 찾는 게 아니요
존사(尊師)를 인도하려 함일세,
원컨대 내 청 들어만 주시고
길손이 누구인지 묻지 마오.
부득은 이 말을 듣고 몹시 놀라면서 말했다.
"이곳은 여자와 함께 있을 곳이 아니나, 중생을 따르는 것도 역시 보살행의 하나일 것이오. 더구나 깊은 산골짜기에 날이 어두웠으니 어찌 소홀히 대접할 수 있겠소."
이에 그를 맞아 정중히 암자 안에 머물게 했다.
밤이 되자 부득은 마음을 맑게 하고 지조를 닦아 희미한 등불이 비치는 벽 밑에서 고요히 염불했다.
밤이 새려 할 때 여인은 부득을 불러 말했다.
"내가 불행히 마침 산고가 있으니, 원컨대 스님께서는 짚자리를 준비해 주십시오."
부득이 불쌍히 여겨 거절하지 못하고 은은히 촛불을 비치니 낭자는 이미 해산을 끝내고 또 다시 목욕하기를 청했다.
부득은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마음속에 얽혔으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그보다 더해서 마지못하여 또 목욕통을 준비해서 낭자를 통 안에 앉히고 물을 데워 목욕을 시켰다.
그러자 이미 통 속 물에서 향기가 진하게 풍기면서 금빛 액체로 변한다.
부득이 크게 놀라자 낭자가 말했다.
"우리 스승께서도 이 물에 목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부득이 마지못하여 그 말을 좇았더니 갑자기 정신이 상쾌해졌다.
살결은 금빛으로 바뀌고, 옆을 보니 졸지에 연줄기가 하나 생겼다.
여인은 부득에게 앉기를 권하고 말했다.
"나는 관음보살인데 여기 와서 대사를 도와 대보리(大菩提)를 이루도록 한 것이오."
여인은 말을 마치더니 이내 보이지 않았다.
한편 박박이 생각하기를,
"부득이 오늘 밤에 반드시 계(戒)를 더럽혔을 것이니 비웃어 주리라" 하고 가서 보니 부득은 연화대에 앉아 미륵존상이 되어 광명을 내뿜는데, 몸은 금빛으로 변해 있었다.
박박은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말한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습니까."
부득이 그 까닭을 자세히 말해 주니 박박은 탄식했다.
"나는 마음속에 가린 것이 있어서 다행히 부처님을 만났으나 도리어 대우하지 못했으니 큰 덕이 있고 지극히 어진 그대가 나보다 먼저 이루었소. 부디 옛날의 교분을 잊지 마시고 일을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부득이 말한다.
"통 속에 금액이 남았으니 목욕함이 좋겠습니다."
박박이 목욕을 하여 부득과 같이 무량수(無量壽)를 이루니 두 부처가 서로 엄연히 대해 있었다.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다투어 와서 우러러보고 감탄하기를,
"참으로 드문 일이로다." 했다.
두 부처는 그들에게 불법의 요지를 설명하고 나서, 온몸으로 구름을 타고 구름에 온몸을 싣고 가버렸다.
금용 대불모 불사도량 부용사 현산 지관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