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모 금용 일섭스님

불모(佛母) 금용(金蓉) 일섭(日燮)스님

지관 2008. 6. 26. 08:35
 

 

금용(金蓉) 김일섭(金日燮)스님과 부용사(芙蓉寺)

< 자료: 지관스님(부용사 주지) 소장(所藏)의 일섭스님 육필(肉筆) 비망록(備忘錄) “연보(年譜)”, “불교미술 일섭문도회” 회원수첩(2002), “불모 김일섭 선생비” 비문, “부용사창건비” 비문>

인간문화재 제48호인 불모(佛母) 금용(金蓉) 김일섭(金日燮)스님은 불화(佛畵), 개금(改金), 단청(丹靑), 조각(彫刻) 등 다방면으로 한평생을 불사에 전념하여 쇠잔해가던 근대불교미술을 중흥시킴으로써 우리나라 불교미술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역사적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불교미술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전북에서 김제 부용사를 창건하고 성예원을 개설하여 불상불화전문연구기관으로 후배양성에 남다른 열정을 쏟았던 김일섭(金日燮: 1900~1975)은 경자(1900)년 12월18일(양력, 1901년 2월 6일) 전남 보성군 문덕면 덕치리 514번지에서 아버지 김해 김씨 수모(守模) 와 어머니 장수 황씨 화옥(花玉)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속명은 갑병(甲炳)이며, 법명(法名)은 일섭, 법호(法號)는 퇴운(退耘), 화호(畵號)는 금용(金蓉)이다.


그는 평생 기록한 육필비망록‘연보’에 의하면 6세부터 종형 치옥(致玉)으로부터‘사자소학’‘학어집’‘통감’등을 배우고 그의 부모는 그가 어렸을 때부터 ‘불문에 들어야 장수한다’는 말을 누누이 들었다. 이에 부모는 아들의 단명을 막기 위해‘수연’(壽延)이라는 이름을 지어 불렀고, 급기야 15살 때 송광사로 출가시켰다. 임유완(林裕玩) 청오(靑悟)화상을 은사로 조봉우(趙鳳羽)추광(秋光)화상을 계사로 득도하여 보명(普明)학교를 졸업한 후 중등과(中等科) 지방학림(地方學林)을 거쳐 사교(四敎)를 이수(履修)했다. 세연의 연장을 위해 어쩔 수없이 불문에 들어선 금용 일섭스님은 당시 송광사 화원으로 주석했던 봉린스님을 만나 불화와의 첫 인연을 맺었다. 19살부터 예수재용 인물 화초를 그렸던 스님은 얼마 안 가 봉린스님으로부터 그림재주를 인정받았다고 한다. 한봉린(韓鳳麟)스님을 도와 인물 그리는데 동참하였다.

   

국내 최초의 전통불교 미술인을 양성하는‘성예원(聖藝院)’이라는 현판을 걸고 제자들을 가르치고 길러내어 현재 그의 제자들이 전국 각지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일섭문도회를 결성하여 2년에 한번씩 전시회와 학술발표회를 개최하면서 한국 전통불교미술의 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에 남다른 소질이 있었던 스님은 1923년 22세에 근세(近世) 대불모(大佛母)이신 김보응(金普應)화상을 찾아뵙고 불화(佛畵)를 배워 쉽게 인가(印可)를 받았다. 
그 후 전국 명찰(名刹)을 순례(巡禮)하면서 고화(古畵)를 모사(模寫)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연구 창작하며 삼매(三昧)에 들어 밤을 새우고 끼니를 거른 적이 수없이 많았다. 
  서울 총본산 각황사(覺皇寺 현,조계사)를 비롯 함흥(咸興) 귀주사(歸州寺), 밀양(密陽) 표충사(表忠寺), 합천(陜川) 해인사(海印寺) 등 전국 70여개 사찰에 걸쳐 스님의 발길은 남(南)으로 제주(濟州) 북(北)으로 만주(滿洲) 봉천(奉天)까지 닿았으니 때로는 스승을 따라 때로는 화우(畵友)와 함께 때로는 제자(弟子)를 거느리고 불화, 불상, 단청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아무리 적은 불사(佛事)라도 찾아오는 불모가 있으면 흔연(欣然)히 맞아 함께 일하고 가난한 절을 만나더라도 이해(利害)를 떠나 신심(信心)으로 불사에 임했다. 몸은 한 평생 눈부신 채색(彩色)과 함께 하였지만 언제나 건실(健實)하고 소박(素朴)했으며 아무리 바빠도 예불(禮佛)을 거르지 않았고 밤이 늦어도 일기(日記)는 꼭 쓰고 잠자리에 들었다 한다.

스님은 1938년 김제시 백구면 월봉리 15-20(봉산)에 부용사를 창건하고 < 불상불화전문연구성예원(佛像佛畵專門硏究聖藝院)> 을 개설하여 후배 양성에도 남다른 열정을 쏟았는데 중요무형문화재 단청장(丹靑匠) 제48호 * 해봉(海峰)임석정(林石鼎)스님의 스승으로 당시 전국에서 가장 이름이 높은 불모(佛母)였다. 특히 금호(錦湖), 보응(普應)으로 이어지는 마곡사(麻谷寺) 계통의 호서(湖西) 불화의 맥과 선암사(仙巖寺) 쾌윤, 송광사(松廣寺) 의겸(義謙) 등으로 이어지는 호남(湖南) 불화의 맥을 한 몸에 지니고 있었다.
  
* 비문(碑文)에 새겨진 김우일(金又日) 남인식(南仁植) 박상순(朴尙順) 송복동(宋福東) 고재석(高在奭) 신병철(申炳澈) 신언수(申彦守) 임석정(林石鼎) 유봉래(庾蓬萊) 김지죽(金知竹) 박준주(朴俊柱) 신언식(申彦植) 이충렬(李忠烈) 박유종(朴有宗) 서광성(徐光盛) 조정우(曺廷宇) 임동룡(林東龍) 이철우(李哲佑) 이수철(李守喆) 이정오(李正悟) 우국정(禹國楨) 이명렬(李明烈) 등의 문하생(門下生) 명단(名單)만 보아도 기라성(綺羅星)같은 존재들로 가득하다.
  
스님은 "불교미술운동"이라는 논문을 통하여 우리나라 불교미술의 중흥을 역설한 바 있으며, 1965년 초 <대한불교미술협회> 창립당시 초대회장과 심사위원장에 피선되어 다년간 불교미술가 조직의 초석을 다지며 공적(公的)으로도 헌신했다. 저서로는 ‘현실에서 찾아보는 불교 상식’(三榮出版社. 1972년)이 있다.

우리나라의 문화재보호법(文化財保護法)에 의해서 이른바 인간문화재(人間文化財)가 만들어진 때는 1972년 8월 1일 이었다. 당시에 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丹靑匠)으로 첫 지정된 화사(畵師)는 일섭(日燮) 스님을 비롯하여 만봉(萬奉) 이치호(李致虎,1909년생), 월주(月州) 원덕문(元德文,1912년생)이었다. 이들은 승려(僧侶)로서 모두 조선왕조 영조(英祖)때 도화서 화원으로 유명한 석상겸(釋尙謙)의 계맥(系脈)을 이어받은 것으로 밝혀지고 있는 전통적인 화사들이다.

또 스님은 한평생을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정리한 육필(肉筆) 비망록(備忘錄)인 “일섭일생년보(日燮一生年譜)”를 남겨 놓아 미술사적으로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스님은 1975년 3월 27일(음 2월 15일) 세수(世壽) 75세, 법랍(法臘) 51세로 전북 김제시 부용사(芙蓉寺)에서 입적(入寂)하시니 문하(門下)제자들이 뜻을 모아 문화공보부의 후원으로 비석(碑石)을 제작, 부용사 입구에 건립하여 스님의 부도탑1978년(불기2522년)에 건립한 퇴운당지영탑(退耘堂之影塔)과 미타행(彌陀行)보살(俗名: 朴日生)의 부도탑 그리고 그 옆 부용사 창건비와 나란히 현존(現存)하고 있다.  

* 일섭스님과 김제(金堤)금산사(金山寺)와는 인연이 많은데, 1934년 3월 9일 밤 실화(失火)로 소실(燒失)된 미륵(彌勒) 본존상(本尊像)을 당시 금산사 황성렬(黃成烈)주지가 가산거사(迦山居士) 김수곤(金水坤) 등의 시주금 1만 6,000여 원을 들여 복원불사(復原佛事)를 하게 되는데 그 미륵본존상 복원불사 입찰당시 김보응(金普應), 이석성(李石城) 김복진(金復鎭)(1901~1940) 등과 참가하여 3자 3치의 축소모형(縮小模型) 입불(立佛)을 제작(1935년 8월21일~9월10일) 출품함으로써 당시 감정(鑑定)심사원(審査員) 석전(石顚) 박한영(朴漢永(1870~1948)선생과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1892~1979)화백으로부터 최유망(最有望)작품이라는 평호(評好)를 받은바 있었다.

이 입찰 작품은 그 해 겨울에 당시 강경(江景) 황금정(黃金町) 122번지 불교당(佛敎堂)에 불사를 하면서 옮겨 봉안하였다가 1941년 4월에 제주도 성내(城內) 운수당(運壽堂) 백양교당(白羊敎堂) 불사를 하면서 도금(鍍金)하여 또다시 옮겨 봉안하였다.

김보응, 이석성 등과 좌협시보살의 오른쪽어깨를 보결(補缺)(9월17일~10월6일)하여 주었으며, 그 후 김복진(金復鎭)의 신조(新造) 금산사 미륵존상을 수정(修整)하고 좌우보처상을 함께 도금(鍍金)(1937년 5월12일~8월25일)한바 있으며, 문하(門下) 남인식(南仁植), 박상순(朴尙順) 등과 합작으로 삼성각(三聖閣)에 산신(山神) 칠성(七星) 독성(獨聖) 등의 탱화 3점을 1945년에 완성해주어 지금까지 봉안하여 오고 있고, 그밖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이것저것 적잖은 불사를 한 인연이 있다.
  
2001년 탄신 100주년을 맞아 <금용불모기념사업회> 는 대를 이어가고 있는 100여명이 넘는 문하생들로 <불교미술 일섭문도회>를 결성하여 매년 일섭스님의 기일(忌日)인 음력 2월 15일을 정기총회일로 정하여 경남 양산 통도사(通度寺)에서 모임을 갖고 있으며, 여러 가지 뜻 있는 기념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전북 김제시 백구면 황토로 1074-30
                                                                    http://blog.daum.net/songam88/   

                                                                           백화도량  부용사   玄山 志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