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 자료실
사람을 업수이 여기지 말라
지관
2006. 12. 10. 12:50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무렵 조선왕조 이조판서였던 이식(1584∼1647)은
어려서 몸이 하약하여 경기도 양평에 있는 용문사에 가서 공부를 했다.
맑은 공기를 마시고 스님들을 따라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마음의 수양을 삼자 건강도 좋아졌다.
스승인 유념스님에게서 학식과 덕행의 가르침을 받고 있었는데
유념스님은 연로해서 병으로 자리에 눕고 말았다.
그는 밤낮으로 자지 않고 열심히 노스님을 간호하며 공부하였다.
“그만 자거라.”
“제가 십년동안이나 스님께 글을 배우고도 아직도 깨닫지 못한 것이 많습니다.
이제 스님께서 병환이 심하시니 한 글자라도 더 부지런히 배우지 않으면 다시 누구에게 배우겠습니까?”
“그렇지 않다. 세상 만물 중에 스승 아닌 것이 없느니라. ”
하찮은 짐승이나 새, 나무에게서도 배울 것이 있거늘, 어찌 내가 죽는다고 걱정하느냐?
그러니 내가 죽은 후에도 훌륭한 스승이 나타나 가르쳐 줄 것이니라.
그로부터 며칠 후 유념스님의 병세는 더욱 위독해져 마침내 임종을 앞에 두고
이식에게 훈계하였다.
“아무리 초라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업수이 여기지 말고 배움을 청하라.”
이 유념스님의 한 마디를 이식은 잊지 않고 드디어 그 절에서 밥 짓고 땔나무를 해주는 불목을 노스승으로 모시고 공부를 계속하니 이제까지 십여 년 배운 것 보다 일 년 동안 배운 것이 더 많았다.
그 후 노스승의 권유로 한양에 가서 과거를 보니 장원급제를 하였고, 학문이 뛰어나서 나라의 중요한 벼슬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