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 자료실
믿음에 대한 확신과 의지
지관
2006. 12. 7. 13:00
종교에는 믿음에 대한 확신과 의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신앙생활을 할 바에는 확실하게 믿는다는 힘을 가져야 하고
무엇인가를 성취하겠다는 적극적인 마음과 뜻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불상은 부처님을 상징할 뿐 불상 자체가 부처는 아닙니다.
다만 그 불상을 통해 참 부처님을 볼 수 있고 만날 수 있고
존경심을 표할 수 있고 부처님과의 신앙적 교류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교의 궁극인 깨달음까지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불상은 불상으로써의 가치를 갖게 되고 의의와 의미를 부여받게 됩니다.
말하자면 불교신자는 불상에게 예배를 하고 경배를 함으로써
참 부처님, 즉 진불(眞佛)에게 예배와 경배를 올리는 것이요,
이를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을 확신하고 또한 서약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상예배를 보고 우상숭배요, 미신이라고 하는 것은
그 겉과 형식만을 보고 말하는 아주 잘못된 판단이어서 전혀 맞지 않는 말입니다.
불교는 역사적으로 실재(實在)하지도 않는
또 영원히 실재할 수도 없는 허상을 믿는 종교가 아니고
역사적으로 그 실존을 증명할 수 있는 실재적인 인물과
그의 가르침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보다 진실하고 보다 현실적인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를 믿는 사람은
어느 종교를 믿는 사람보다 믿음에 대한 확신과 의지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불교는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말씀을 믿는 종교입니다.
어느 면에서는 부처님 그 자체를 믿는 종교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 인연을 다 마치시고 열반할 무렵에 이르러 남기신 유훈이
“남을 의지하지 말고 네 자신에 의지하고 법에 의지하라(自燈明 法燈明)” 했습니다.
불교의 종교적 위대함은 실로 여기에 있다 할 것입니다.
“나를 따르라”가 아니라 내가 이른 말, 즉 법을 따르란 것이었습니다.
따르란 것은 흔들림 없이 믿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흔들림 없이 믿을 때 거기에는 비로소 구원과 구제, 가피와 가호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백화도량 부용사 송암/지관 합장
신앙생활을 할 바에는 확실하게 믿는다는 힘을 가져야 하고
무엇인가를 성취하겠다는 적극적인 마음과 뜻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불상은 부처님을 상징할 뿐 불상 자체가 부처는 아닙니다.
다만 그 불상을 통해 참 부처님을 볼 수 있고 만날 수 있고
존경심을 표할 수 있고 부처님과의 신앙적 교류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교의 궁극인 깨달음까지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불상은 불상으로써의 가치를 갖게 되고 의의와 의미를 부여받게 됩니다.
말하자면 불교신자는 불상에게 예배를 하고 경배를 함으로써
참 부처님, 즉 진불(眞佛)에게 예배와 경배를 올리는 것이요,
이를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을 확신하고 또한 서약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상예배를 보고 우상숭배요, 미신이라고 하는 것은
그 겉과 형식만을 보고 말하는 아주 잘못된 판단이어서 전혀 맞지 않는 말입니다.
불교는 역사적으로 실재(實在)하지도 않는
또 영원히 실재할 수도 없는 허상을 믿는 종교가 아니고
역사적으로 그 실존을 증명할 수 있는 실재적인 인물과
그의 가르침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보다 진실하고 보다 현실적인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를 믿는 사람은
어느 종교를 믿는 사람보다 믿음에 대한 확신과 의지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불교는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말씀을 믿는 종교입니다.
어느 면에서는 부처님 그 자체를 믿는 종교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 인연을 다 마치시고 열반할 무렵에 이르러 남기신 유훈이
“남을 의지하지 말고 네 자신에 의지하고 법에 의지하라(自燈明 法燈明)” 했습니다.
불교의 종교적 위대함은 실로 여기에 있다 할 것입니다.
“나를 따르라”가 아니라 내가 이른 말, 즉 법을 따르란 것이었습니다.
따르란 것은 흔들림 없이 믿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흔들림 없이 믿을 때 거기에는 비로소 구원과 구제, 가피와 가호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백화도량 부용사 송암/지관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