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庵 지대방

겨울의 문턱에 서서

지관 2006. 12. 7. 12:44
찬바람이 부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느덧 입동(立冬)소설(小雪)을 지나 겨울의 문턱에 섰습니다.
들판은 점점 황량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벼가 잘려나간 그루터기에는
어느새 겨울의 흔적이 전령처럼 내려 앉아 있음을 봅니다.

초록에서 회색으로 야위어 가는 수목의 모습에서도 겨울은 스며있고,
생기를 잃어가는 온갖 들꽃에서도 겨울의 냄새가 납니다.
과수원의 초록색 잎 사이로 탐스럽던 황금색 감들도 그 자취를 감추고,
빈 가지로 남아 이제는 잎 떠나보낼 순간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내 나목으로 한 철 살아야 할 순간이 온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허허롭습니다.

여름 한 철 내내 하늘을 떠 받쳐 바람을 만들던 고목도
잎을 떠나보내고 난 가지 사이로 하늘이 점점 넓어만 갑니다.
송곳처럼 솟은 가지에서 얼마나 많은 밤을 삭풍에 울어야 할지 숙연해집니다.
차가운 바람에 마음까지 시리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추위가 더 차갑게 다가오는 겨울은
점점 하늘에서조차 파란색을 밀어내고
바랜 회색하늘이 점령군처럼 들어서고 있습니다.

우리 삶이 물질적으로 풍요하지는 못해도 마음이나마
이 겨울에 따뜻하게 데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잠시 머물다 가는 유한한 삶에서 가난은 뭔지 몸도 위축시키고
마음마저 얼어붙게 하는 겨울을 연상케 하지만,
자연을 벗 삼고 가난을 친구삼아 삶의 외곽에서 인생을 관조하며
여유 속에 한 세상 초연하게 살다 간 선인들의 사고 속에서
고달픈 현실을 잠시 잊고 누군가의 말처럼
가난은 불편할 뿐이라는 말 다시 한 번 음미 해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의 풍요를 정신의 풍요인양 생각하지만
마음의 풍요가 물질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걸 생각합니다.

마음이 여유로운 사람은 나의 어려움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마음의 눈으로 볼 줄 아는 사람일 것입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편안하면 그것이 행복이다.
권력과 부귀는 뜬구름과 같은 것,
세끼 걱정이 없다면 더 무슨 욕심 바랄 것인가"라고 생각하며
나물 먹고 물마시며 선인들은 그렇게 살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중요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얼마나 건강한 마음으로 사느냐 하는 것이 삶의 기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부의 부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삶의 질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인생이란 긴 여정을 생각 해 본다면 중요한 것은 우리 삶의 질일 것입니다.

집집마다 크고 작은 걱정거리가 있습니다.
너의 상처가 네가 보기에는 커 보이지만
남이 보기에는 자신이 갖고 있는 상처보다 작아 보인다는 말처럼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은 생각지 않고,
없는 것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위로만 바라보고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가난은 때로는 우리 삶을 피곤하게 하고 지치게 하며 절망케도 합니다.
하지만 건강한 정신에 건강한 육체만 있다면
겨울 지나면 따뜻한 봄이 오듯 눈앞의 재앙에 조금씩 맞선다면
그다지 비참하지만은 않으며,
또한 우리가 경험에서 뭔가 얻을 수 있다고 깨닫는 순간
모든 것이 한결 쉬워진다고 했습니다.

핏빛 빛깔로 드러누운 낙엽과,
마지막 혼신의 열정으로 자신을 붉게 태우는듯한 단풍과,
길거리에서 마지막 변신을 시도하는 노란색의 은행잎을 보면서
한 철이 끝나 감을 느낍니다.
자연은 시작과 끝이 있어 더욱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인생도 끝이 있어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젊음이 아름다운 건 늙기 때문이며, 꽃이 아름다운 것은 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름다운 늦가을 어느 날,
문득 소매 속으로 파고드는 찬바람에 겨울을 느끼며
겨울의 한 가운데서도 마음 가난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한 해의 끝이 아름다울까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