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庵 지대방

그대가 곁에 있어도

지관 2006. 12. 7. 12:26

물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류시화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라는 시입니다.
물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괴어있는 물이건 흐르는 물이건
그 물 속에는 많은 것들이 함께 있습니다.
텅 빈 하늘에도 새가 날고 해와 달이 돋아 오르고 별이 솟습니다.
바람이 불고 구름이 흐르고 비와 이슬을 머금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내 안에도 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을지라도 무수한 인연의 끄나풀들이 얼기설기 얽혀 있습니다.
어떤 끄나풀은 내 삶을 넉넉하고 순수하게 채워주는가 하면,
또 어떤 끄나풀은 내 삶을 어둡게 하고 지겹게 하고, 때로는 화나게 만듭니다.

내 안에서 나를 주재하는 이는 누구일까?
또 나를 다스리고 나를 뒤흔드는 이는 과연 누구일까? 그 ‘나’는 누구인가?
사람에 따라서 그것은 신일 수도 있고, 불성이나 보리심일 수도 있습니다.
선수행자라면 그것은 또한 그가 끊임없이 추구해야 할 화두일 것입니다.
그리고 맹목적인 열기에 도취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자나 깨나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 사랑하는 연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것들은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을 흘러
은밀한 내 꿈과 하나가 됩니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니,

이렇듯 그리운 존재를 지니고 절절하게 사는 사람은
삶의 의미를 캐내면서 스스로 꽃다운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대가 곁에 있으면서도 그립기만 하는 그대를 당신은 지녔는가?
그런 ‘그대’ 를 지닌 사람은 축복받은 삶입니다.
그리고 그런 ‘그대’ 를 지니지 못한 가슴들은 이런 시를 거듭 읽으면서
일상 속에서 삶의 신비를 스스로 찾아내야 합니다.
이 가을에 우리도 그대에 대한 그리움을 한번쯤 지녀볼 일이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