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말기의 스님인 경허(鏡虛)스님이 어느 날 제자 만공(萬空)을 데리고 탁발을 나갔다. 그 날의 탁발 성적은 매우 좋아 쌀자루가 아주 묵직했다.
절로 돌아가는 길은 아직도 멀었건만 만공스님은 쌀자루가 무거워 발을 질질 끌며 스님의 뒤를 따랐다. 마침 어느 마을을 지나게 되었는데 앞에서 예쁜 여인이 물동이를 인 채 걸어오고 있었다.
순간, 앞서 가던 경허스님이 여인을 와락 안더니 입을 맞추는 것이었다. 여인은 물동이를 떨어뜨리며 비명을 질렀고, 부근에서 밭일을 하던 동네사람들이 이를 목격하고 소리쳤다.
“아니, 어디서 요망한 중이!” “저 놈들 잡아라!”
괭이며 낫을 들고 달려오는 동네사람들을 피해 경허스님은 냅다 뛰기 시작했고, 만공스님은 그 뒤를 혼신의 힘을 다해 쫓아갔다.
죽을힘을 다해 도망가는 두 사람을 당하지 못하여 동네사람들이 발길을 돌리자 경허스님이 물으셨다.
“이놈아! 그 쌀자루가 무겁지 않더냐?” “아이고, 스님 무거운 게 다 무엇입니까?” “바로 그것이니라. 무겁다는 의식이 없으면 참으로 무겁지가 않은 법이란다.”
(주해) * 경허(鏡虛)스님(1849∼1912)은 한국 근현대 불교를 개창했다고 일컬어지는 대표 중에 대표인 대선사이다. 1849년 전주에서 태어났고, 9세 때, 경기도 과천 청계산에 있는 청계사로 출가하였다. 법호는 경허(鏡虛), 법명은 성우(惺牛)이다. 1912년 4월 25일 새벽에 임종게를 남긴 뒤 입적하였다. 세수 64세, 법랍 56세이다. 저서에는 경허집이 있다.
경허선사의 수제자로 흔히 "삼월(三月)"로 불리는 혜월(慧月1861~1937), 수월(水月1855-1928)ㆍ월면(月面=만공(滿空)1871~1946) 선사가 있다.
경허 선사는 “만공은 복이 많아 대중을 많이 거느릴 테고, 정진력은 수월을 능가할 자가 없고, 지혜는 혜월을 당할 자가 없다”고 했다. 삼월인 제자들도 모두 깨달아 부처가 되었다. 이들 역시 근현대 한국불교계를 대표하는 선승들이다.
*만공(滿空)스님(1871~1946)은 1871년 3월 7일 전북 정읍군 태인에서 태어났고 14세에 출가하여 법명은 월면(月面)이며, 법호는 만공(滿空)이다. 1946년 10월 20일. 세수 75세, 법랍 62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