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총림 조계산 선암사 부도전>
〈법구경〉에 “이교도들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그들에게 두려워할 것이 있을지라도 선(禪)을 추구하여 모든 위험과 재난을 이겨내라.”
현재 우리들이 살아가는 사회는 다종교사회입니다. 불교만이 신앙되는 사회가 아니다보니 타종교와 끊임없이 갈등을 겪으면서 지낼 수 밖에 없고 이교도들의 극성스러운 도전과 비방 등으로 곤욕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부처님 말씀처럼 선(禪)을 추구하면서 꾸준히 정진하면 그러한 것들은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종교를 신앙하는 이에게 참다운 용기는 왜 필요할까요? 종교는 현세를 내세로 이어주는 매개체이기도 합니다. 다가오는 미래, 즉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해서 갖고 있어야 할 것은 건전한 정신입니다. 종교는 혼탁한 사회 속에서 “진실이 아닌 것은 정의가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양심이며 건전한 정신은 선(禪)을 바탕으로 한 용기에서 나타나기에 종교를 신앙하는데 용기는 중요합니다.
〈대열반경〉에 제석천(帝釋天, 불교를 수호하는 천신)이 한 수행자가 부처가 될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이 있는지 여부를 시험하기 위하여 나찰(羅刹,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악독한 귀신)의 몸으로 변신하여 수행자에게 과거 부처님이 말씀하신 시의 앞 구절을 외웠습니다.
“제행무상 시생멸법(諸行無常 是生滅法, 이 세상 모든 일은 덧없으니 그것은 곧 나고 죽는 법이라네)” 라고 하니 수행자는 이 시를 듣자 한없는 기쁨을 느끼고 다음 구절을 일러 달라 하였습니다. 나찰이 거절하니 수행자는 이 덧없는 몸을 버려 죽기로 맹세하며 일러 달라고 하므로 나찰이 수행자의 목숨을 담보로 나찰이 시의 후반부를 일러주니
“생사멸이 적멸위락(生死滅已 寂滅爲樂, 생사의 갈등이 사라지고 나면 모든 것이 열반의 기쁨이어라)” 이라고 하였습니다. 수행자는 이 구절을 듣고 더욱 환희심이 솟았습니다.
수행자는 마지막으로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 시는 과거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시를 들으려고 몸을 버리는 것은 내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의 인색한 사람들에게 내 몸을 버리는 이 광경을 보여 주고 싶다.”
그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마침내 몸을 날려 벼랑에서 떨어지니 나찰은 곧 제석천의 모습으로 되돌아와 공중에서 그를 받아 땅에 내려 놓았습니다. 이때 여러 천신들이 운집하여 그의 발에 예배하면서 그토록 지극한 구도의 정신과 서원을 찬탄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불교를 믿는 사람이라면 꼭 새겨 두어야 할 것이며, 깊이깊이 명심하고 용기를 내어 수행정진에 게으르지 말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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