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10월 보름, 전국의 산사와 선방, 토굴에 수천 명의 수행자들이 바랑하나 메고 찾아 들었습니다. 이들은 큰 스님들로부터 화두(話頭)를 받아 들고서 동안거에 들었습니다. 네 본성을 찾아 나서라는 ‘이 뭣고’를 비롯하여 ‘무(無)’ ‘부모미생전 본래면목(父母未生前 本來面目)' 등과 같은 화두들입니다.
수도승들은 정월 보름까지 석 달 동안 틀어박혀 참선수행에 몰두합니다. 안거는 우기(雨期)에 땅에서 나오는 미물과 초목들을 밟지 않도록 석가모니 부처님이 수행자들의 유행(遊行)을 중단시킨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여름비를 피해 3개월 동안 사찰에서 수행에 전념하는 하안거(夏安居)는 그래서 우안거(雨安居)라고도 불립니다. 눈이 많은 북방에 불교가 전파되면서 동안거가 생겨났고 많은 운수납자들이 여름과 겨울안거에 듭니다.
동안거 두 달째! 산사에 소리 없이 내리는 눈처럼 평화로워 보이지만 내면은 처절하도록 치열합니다. “부처를 만나거든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거든 조사를 죽여라.”라는 임제선사의 가르침처럼 미망(迷妄)과 번뇌와의 싸움은 육신을 박제하듯 고통스럽습니다. 머리카락에서 발톱까지 저려오고 수마(睡魔)가 온몸의 땀구멍으로 쳐들어오고 화두는 여우처럼 놀리며 달아납니다. 큰 대자로 누우면 고통에서 해방되지만 그걸로 만사휴의(萬事休矣)입니다.
성철스님은 8년 동안 눕지 않고 앉은 채 자는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행하였습니다. 그러고도 매년 두 차례 안거는 아예 잠을 자지 않는 용맹정진으로 지났습니다. 철저히 고독해봐야 참 자아(眞我)를 볼 수 있다지만, 도시의 속인들이라 해서 마음의 동안거를 못 할 건 없습니다.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坐臥 語默動靜)! 가든 머물든 앉든 눕든, 말하든 말하지 않든 움직이든 고요히 있든, 지금 내가 있는 곳을 선방삼아 스스로를 돌아보며 화(火)를 끊어 마음을 놓을 수 있다면 그것이 이 겨울을 안온하게 사는 무심의 경지일 것입니다.
불자 여러분! 전국의 크고 작은 사찰에서 동안거 결제한 지 벌써 두 달째 접어 들어갑니다. 방안에 움츠리고 앉아 있을 시간이 많아지고, 활동에 제약을 받는 추운 겨울에 매일 잠시 시간을 내어 결가부좌(혹은 반가부좌)자세로 자신을 관조하며 조용히 선정에 들어 참‘나’를 찾아보는 마음공부를 해봄이 어떨는지요? 아마 지금보다는 훨씬 자신의 성숙을, 또한 살아가는 지혜를 얻을 것이고 돈독한 신심으로 무량공덕을 쌓을 것입니다. 나무관세음보살 _()_
백화도량 부용사 송암/지관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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