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 자료실

부부인연

지관 2016. 9. 3. 22:12

부부, 7천 겁의 인연

시공을 초월하여 싸안아야 할 관계

 

옛날, 산골 절집을 찾아다니며 종이장사를 하는 총각이 있었다. 의지가지없는 외톨이에 성품까지 미련하여 나이 서른이 되도록 면총각을 못했다. 어느 날 지리산 자락을 헤매다가 한 스님을 만났다. 주장자에 긴 수염 휘날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산신령인지라, 노총각은 다짜고짜 스님 앞을 가로막고 매달렸다. 제발 장가 좀 들게 해 주십사는 노총각의 애원에 스님은 허허 웃으며 한 곳을 가리킨다.

 

“네가 지어 놓은 인연이 지금 저 삼거리 국밥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가 보시게나."

 

귀가 번쩍 뜨인 노총각이 한달음에 쫓아가니, 국밥집의 쭈그렁 노파가 버선발로 달려 나와 옷소매를 붙잡는다.

 

“내가 늘그막에 주책없는 서방질로 딸아일 하나 두었는데, 아까 웬 스님이 말하기를, 오늘 해 지기 전에 그 배필 될 총각이 등짐을 지고 찾아올 거라는 게야. 그래 긴가민가하며 기다리고 있었더니, 원 세상에 이렇게 영험할 줄이야!”

 

궁상맞은 노파의 행색이 그슬리긴 했지만 사고무친 노총각 주제에 장모 인물 따지게 생겼는가. 헤벌쭉 달아올라 딸아이를 찾고 있는 노총각에게 노파가 일침을 놓는다. 혼인을 다짐하기 전에는 절대로 딸아이를 보여 줄 수 없노라고. 다급해진 노총각, 내일 당장 혼례를 치르마고 덥석 언약을 한다. 그제서야 못 이긴 척 노파는 방문을 열고 제 딸을 보라 한다.

 

방엔 병색이 완연한 간난장이가 늘어져 있다. 버짐 핀 낯짝에 헤진 사타구니, 파리 떼와 부스럼이 새까맣게 들러붙은 몰골이 차마 사람이라 할 수도 없는 꼬락서니다. 그때, 얄망스런 노파의 호들갑이 귓전을 때린다.

 

“나도 저것이 며칠이나 살까 싶어 팽개쳐 두었는데, 자네와 해로할 인연이라 하니 이제부턴 제대로 거두어 봄세. 한 십 년만 지나면 아쉬운 대로 여자구실은 할 수 있을 테지. 호호호, 어여 들어가 각시 기저귀라도 좀 갈아 주게나.”

 

노총각은 기겁을 하고 말았다. 저 비루먹은 간난장이가 연분이라니, 일각이 여삼추인데 항차 십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니, 그나마 시랑고랑 언제 명줄이 끊어질지도 모를 판에…, 저깟 것을 배필로 맞느니, 차라리 한평생 홀아비로 사는 게 낫겠다. 노총각은 생각할수록 열이 치받는다. 그렇다고 그냥 무시해 버리기엔 아까 산에서 만난 스님의 형형한 눈빛이 걸린다. 더군다나 이미 혼인을 하겠다고 약조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날 밤 종이장수 총각은 그만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노파가 잠든 사이, 간난장이의 목을 졸라 대숲에 던져 버리고는 그대로 줄행랑을 쳐버린 것이었다.

 

세월이 흘러 종이장수의 나이 어느덧 마흔 중반이 되었다. 아직도 홀몸이었지만 지은 죄가 있어 여자는 기대도 않고 살았다. 그런데 뜬금없이 중매가 들어왔다. 꽃다운 열여덟 살 처자가 늙다리 총각한테 시집을 오겠단다. 허면 그 스님이 땡추였나? 긴가민가, 반신반의로 응대를 하건마는 중매쟁이는 신바람이 나서 제꺼덕 혼인을 성사시켜 놓는다.

 

드디어 첫날밤, 새악시와 마주한 노총각은 만감이 교차한다. 그래 차마 옷도 벗기지 못하고 있는데 어린 각시가 스스로 저고리를 벗더니 배에 난 끔찍한 흉터를 보여준다. 웬 종이장수 놈에게 목이 졸려 대숲에 버려질 때, 대나무 그루터기에 뱃가죽이 찢겨 그리 징그러운 흉터가 생겼단다. 천운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늙은 홀어미가 제대로 거둬주지 않아 철부지 때부터 떠돌면서 저 홀로 자랐단다. 눈물 어린 고백을 들어본 즉, 십오 년 전 지리산 장터의 바로 그 국밥집 딸의 사연이다. 들을수록 기막히고 염장이 지려온다. 어리석을 손! 이렇게 만나고 말 것을….

 

이튿날, 종이장수는 어린 아내의 손을 잡고 지리산 깊은 골로 노스님을 찾아갔다. 눈물로 참회하는 그에게 노스님은 자애로운 법문을 들려준다.

 

“부부는 필연이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각자가 무려 7천 겁을 통해 쌓은 인연 때문에 부부로 만난다. 뉘라도 그것을 피할 수 없다. 일천 년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로 집채만한 바위를 뚫어내는 시간이나, 일백 년에 한 번씩 내려와 스쳐가는 선녀의 옷자락으로 그 바위가 닳아 없어지는 시간을 일 겁이라 하는데, 그런 시간 칠천 겁이 쌓였으니 인간의 지혜로는 감히 헤아려 볼 수 없는 무량수의 시간이다. 그 긴 시간 동안 서로의 과보가 얽히고설켜 부부로 만난다. 그러니 부부란 참으로 지중하고 또한 지독한 인연이다. 좋든 나쁘든 부부의 인연은 모두 그러하다. 함께 풀어 해결할 것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만나고, 또한 그렇게 산다. 이제 그 이치를 깨우쳤으니 아까운 시간 허비하지 말고, 서로 아끼고 위하면서 후회 없이 잘 살아라. 좋은 것이면 좋은 대로, 나쁜 것이면 나쁜 대로, 모든 것을 받아들여라. 자기가 지은 것을 누가 대신 살아주겠는가. 부디 이번 생에서 남김없이 청산하여 절대로 다음 생까지 끌고 가지 않겠다는 각오로써 헌신하며 살아라.”

 

노스님의 설법은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범망경>에서 밝혀 놓은 가르침이다.

 

사랑의 이름 부부, 칠천 겁의 인연이 무르익어 만나게 된 사이, 지중하고 지중하지만 또한 지독하고 지독한 인연이란다. 그 무량한 시간 동안 맺어온 인연의 세계를 (불가능하지만) 한번 가늠해 보라. 얼마나 크고 넓고, 복잡하겠는가! 그 속에 그 모든 문제의 해답이 있음이다.

 

그렇게 유장한 사연으로 만나 지금 나와 한집에서 아웅다웅 살고 있는 저 ‘웬수’ 같은 짝꿍, 그 애증의 문제들을 지금 당장 눈 앞에 드러난 사안으로만 풀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다. 무량한 시간, 무량한 공간에서 이미 빚어진 무량한 인자(因子)가 있었음이다. 그러니 그 애증의 관계를 보다 크고 넓게, 저 과거세와 미래세, 그리고 우주 공간으로까지 사유의 폭을 확대하고, 통찰하여 싸안아야 한다. 당장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그것을 통째로 받아들여 서로 간에 후회 없이 헌신하라는 것, 석가모니 부처님이 사랑으로 애태우는 세상의 모든 부부들에게 주는 당부이다.

                                                                - 월간[불교와 문화]에 게재 된 내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