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낮추고 양보하고 화합하라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생활하면서 다툼이나 분쟁 없이 화합(和合)을 이루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크게는 국제사회와 한 국가의 정치집단에서도 그렇고, 작게는 가정이나 작은 규모의 단체에서도 소란스럽게 다투는 모습을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보게 되니 말입니다. 심지어 부처님께서 직접 인도하시던 승단(僧團)에서도 패를 지어 서로 “우리가 옳다” 고 주장하며 상대편을 ‘입속의 칼’ 로 찔러대며 싸움이 커진 적이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다툼을 멈추고 싸움을 그만두라. 논쟁도 멈추고 시비도 그만두라" 고 간곡하게 타이르셨지만 오히려 “저희들이 알아서 할 터이니 세존께서는 가만히 계십시오.” 라고 큰 소리를 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남전 율장《마하박가》는 부처님 만년에 있었던 한 교훈적인 사건에 관한 상세한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어느 해 부처님이 코삼비의 고시타승원에서 여름 안거를 보내실 때의 일입니다. 어떤 비구의 행동이 범계를 한 것인지 아닌지를 둘러싸고 분쟁이 일어났다. 양쪽은 험한 말을 하고 마침내는 몸싸움까지 했다. 부처님은 양쪽의 비구들을 불러 화합을 종용했다. 재삼 “싸움을 멈추라” 고 당부하셨지만 그래도 이들의 싸움은 멈추지 않고 “세존께서는 가만히 계십시오. 이 다툼과 논쟁과 시비는 저희들의 일입니다.” 라고 하며 고집을 부려댔다. 부처님께서도 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자 아무도 모르게 길을 떠나 홀로 숲속에 머무시게 되었지만 그들의 분쟁은 끝이 나지 않았다. 결국 비구들의 싸움 때문에 부처님께서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은 그 지역 재가신도들이 분개하여 싸움을 일삼는 비구들에게는 합장인사도 하지 않고 공양도 올리지 말자고 결의하여 실천에 옮기고 나서야 그들은 싸움을 멈추고 부처님께 참회를 올리게 되었다. 이것이 <남전 율장(南傳律藏) 대품>에 전해지는 유명한 코삼비 사건입니다. 물론 재가신도들 및 가섭존자와 같은 장로들의 노력으로 사건은 해결되었지만 이 일화는 2,500년 불교 역사에 걸쳐 ‘분쟁’ 을 중지하고 ‘화합’ 을 강조할 때마다 거론되는 좋은 사례가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고 난 뒤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진리인 법(法)과 제자들의 생활규범인 율(律)을 모아 편찬하는 모임이 열렸습니다. 불교사에서는 이 모임을 일러 '제1결집(第一結集)’이라고 부릅니다. 부처님 시자로 부처님을 가장 오랫동안 모셨던 아난다존자가 법(法)을, 우바리존자가 율(律)을 암송하면 다른 장로스님들이 승인해 주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난다존자가 법을 암송하기 전에 이 자리에 참석한 장로스님들이 아난다존자에게 다섯 가지 잘못을 들어 참회를 요구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첫째 중요하지 않은 소소한 율(律)이 무엇인지 세존께 여쭈어 보지 않은 잘못, 둘째 바느질을 하다가 세존의 옷을 밟은 잘못, 셋째 세존께서 열반하신 뒤 여인들이 먼저 뵙게 하여 그들의 눈물로 세존의 법체를 더럽히게 한 잘못, 넷째 세존께 이 세상에 영원히 머물러 주시라고 간청하지 않은 잘못, 다섯째 세존께서 여인의 출가를 간청하여 허락하게 한 잘못이 있습니다. 이 잘못을 인정하시오.”
이런 질책을 받은 아난다존자가 하나씩 해명을 하면서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예, 그렇게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된 행동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존자님들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에 ‘이것이 잘못된 행동’이라고 인정하겠습니다.” 이것은 <남전율장 소품>에 전하는 일화입니다.
우리가 만약 아난다존자였다면 “이것이 나를 억지로 몰아붙이는 비난, 비방이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난다존자는 대중의 화합(和合)을 위해서 스스로를 낮추고 ‘잘못된 행동’ 이라고 인정을 하였습니다. 아난다존자가 혹시 ‘나는 잘못한 일이 없는데 왜 나를 비난하느냐?’ 며 감정적으로 대응했다면 결집 모임이 제대로 이루어 질 수 없었을 것이고, 부처님의 고귀한 가르침이 사라졌을 지도 모릅니다. 아난다존자에게서 우리는 ‘자신을 낮추어 대중의 화합을 이루는 모범’ 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참고: 부처님이 생존해 계실 때 교단은 분열의 위기를 두 번이나 경험합니다.
하나는 데바닷다가 교단을 장악하려고 음모를 꾸민 일이고, 또 하나는 코삼비 비구들의 다툼입니다. 특히 코삼비 사건은 아주 부끄러운 일입니다.
금용 대불모 불사도량 부용사 현산 지관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