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를 구한 공덕
조선 초기의 정승 조반의 영험담으로 이태조가 명나라 태조 주원장으로부터 개국 국호를 재가받기위해 그를 사신으로 보냈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새로운 나라를 세운 이태조는 명나라 태조로부터 ‘함령국(咸寧國)’ 또는 ‘조선(朝鮮)’이라는 국호 중 하나를 재가받기 위해 많은 충신들을 중국으로 보냈으나 배신 역적 이성계를 모시는 신하라는 이유때문에 모두 돌아오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생각다 못한 이태조는 중국을 수차례 내왕하여 명 태조와 친숙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정승 조반을 보냈습니다.
불교를 믿었던 조정승의 가족들은 예부터 다니던 절에 올라가 무사히 귀가할 수 있기를 기도하였고 조정승도 자신이 즐겨 읽는 <관음경>, <금강경> 등의 경전을 읽으며 일이 성취되기를 발원하였습니다.
개경을 떠난 일행은 황해도 시흥의 어느 주막집에서 죽음이 보장되어있는 여행길의 첫 밤을 착잡한 심정으로 지새웠습니다. 그런데 비몽사몽간에 고깔을 쓰고 가사장삼을 입은 세 사람의 사미승이 조정승 앞에 나타났습니다.
“대감,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이 집 뒷 골짜기로 5리쯤 올라가면 큰 절터가 있는데 그 곳에는 한 길이 넘는 세분의 돌부처님이 풍우를 가리지 못한 채 서 계십니다. 대감이 절을 지어 부처님께 공양하면 반드시 대사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어명을 받고 한시바삐 명나라 태조를 만나야 할 내가 언제 절을 지어 부처님을 모신다는 말씀인가?”
“황해도 감사에게 부탁만 하면 될 것이 아닙니까?”
너무나도 역력한 꿈이었기에 조대감은 집주인을 불러 물었습니다.
“여기에서 5리쯤 떨어진 곳에 옛 절터가 있는가?”
“예, 세 분 돌부처가 반쯤 흙에 묻힌 채 풍상을 겪고 있는 폐사가 있습니다.”
이른 아침 조정승 일행이 그 절터로 올라갔을 때 과연 세 분 부처님께서 풍우에 시달리며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음이 찡해진 조정승은 가람을 짓도록 황해도 감사에게 부탁을 하고 부처님께 이 일을 도와 달라고 발원한 다음 중국으로 갔습니다.
마침내 명나라의 황제를 배알한 조정승 일행은 이태조의 뜻을 상주하면서 국호를 결정해 줄 것을 간청하였고 황제는 노발대발하였습니다.
“국토를 도둑질한 역적이 다시 국호를 지어 허락해줄 것을 청하다니! 저 놈들을 교수 참형하라.”
형장으로 끌려간 조정승은 단정히 무릎을 꿇고 먼저 국왕에게 배알을 했습니다. 이어 부모에게 배알하고 마지막으로 황해도 시흥 산중의 세 부처님께 정례하였습니다.
“필히 대사를 성사하여 부처님 가람이 이룩된 것을 친견하고 공양코자 하였으나 일을 달성하지 못하고 이대로 죽게 되었습니다. 약속을 이행치 못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곧 이어 망나니가 칼을 들고 날뛰더니 칼로 조정승을 내리쳤습니다. 그런데 목은 베어지지 않고 천룡도가 두 동강이 났습니다. 이어서 두 번 세 번 내리쳐도 마찬가지였으므로 이상히 여긴 형 집행관이 명태조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태조가 불렀습니다.
“하늘의 뜻을 알지 못하고 벌을 주어 미안하오. 이제 그대에게 비단 5백필과 황금 1천냥을 내리고 또 국호를 조선이라 재가하노라.”
이 말을 듣고 조정승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본국으로 돌아오던 중 황해도 시흥에 이르자, 많은 사람들이 그 부처님이 계신 산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바로 조정승이 부탁한 절의 낙성식 날이었습니다. 함께 참례하고자 법당에 들어가 절을 하려던 조정승은 깜짝 놀랐습니다. 부처님의 목에 칼자국이 나 있고 피가 맺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정승은 그 연유를 물었습니다.
“지난 3일 미시(未時)에 부처님을 이곳으로 모셨는데 이상스레 칼소리가 나기에 쳐다보았더니 부처님의 목에 칼자국이 생겨나면서 피가 흘렀습니다.”
“다른 부처님도 마찬가지인가?”
“예,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시간의 차이만 있었을 뿐입니다.”
“참 신통한 일이로다. 내가 바로 그 날 그 시간에 교수대에서 칼을 받았다.”
조정승은 그 길로 왕궁에 돌아와 이태조를 뵙고 이 사실을 아뢰니 태조 역시 감개무량해 하며 크게 상을 내리고 절 이름을 속명사(續命寺: 명을 이은 절)라 지어 현판까지 써 주었다고 합니다.
존경하는 마음으로 삼보를 구하는 것은 불자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비록 살아 움직이는 불보살이나 승려가 아니라 할지라도 그것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은 곧 크나큰 발심의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삼보를 구하는 공덕이 어찌 작다고 하겠습니까?
삼보를 구호할 인연이 돌아온다면 기꺼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모시도록 합시다. 그 마음이 바로 불심이요, 보살심이니 보살불자답게 정성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금용 대불모 불사도량 부용사 현산 지관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