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 자료실

제자에게 절을 하다

지관 2011. 7. 28. 16:01

 

중국 당나라 때, 복주 고령사에 신찬(神贊)선사라는 이가 있었다.

처음 출가하여 고향의 대중사에서 은사이신 계현(戒賢)법사를 모시고 있었다. 계현 법사가 불경만 볼 뿐 참선은 하지 않으므로 생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대의 고승인 백장 회해 스님(百丈 懷海 720-814)문하로 갔다. 그 곳에서 마음을 깨쳐 견성하고 다시 계현 법사에게로 돌아왔다. 스승과의 문답이 시작되었다.

 

“내 곁을 떠난 뒤 무엇을 하다가 왔느냐?”

“달리 한 일은 없습니다.”

“고얀 놈, 아무 일 없이 나를 떠나 네 마음대로 돌아다니다니.

산에 가서 나무나 해 오너라.”

 

 

신찬 스님이 나무를 해 오자 이번에는 목욕탕에 물을 데우라고 하였다.

물이 데워지자 계현 법사는 목욕을 하면서 등을 밀라고 하였고, 신찬 선사는 등을 밀면서 말했다.

 

 

“쯧쯧, 좋고 좋은 법당이로구나. (好好法堂)

그런데 부처님이 영험하지 못하구나.”(佛無靈驗)

계현 법사가 그 소리를 듣고 뒤돌아보자

선사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부처가 영험은 없으나 방광은 하는구나.”(佛無靈驗 也能放光)

 

계현 법사는 이 말들을 그냥 지나쳐 버렸다.

 

얼마 후, 계현 법사가 창문 앞에서 불경을 보고 있는데, 벌 한 마리가 열린 쪽문을 놔두고 닫힌 창문으로 나가려고 바둥거리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있던 신찬 스님이 게송을 읊었다.

 

“열린 문으로 나가려 하지 않고 (空門不肯出 공문불긍출)

봉창을 두드리니 참으로 어리석다. (投窓也大痴 투창야대치)

백 년 동안 옛 종이를 들여다본들 (百年鑽古紙 백년찬고지)

어느 날에나 나갈 수 있겠는가.” (何日出頭期 하일출두기)

 

 

계현 법사가 그 게송을 듣고 생각해 보니, 지난번 목욕탕에서 들은 말과 함께 왠지 예사롭지가 아니한 것 같아 신찬 선사를 불렀다.

“바른대로 말하여라. 어느 스님을 찾아다니며 공부를 했느냐?”

“예, 백장 스님 문하에서 공부를 하고 한 생각 달라졌습니다.”

 

계현 법사는 그 말이 끝나자마자 밖으로 뛰어나가 대종을 울리며 외쳤다.

“내 상좌가 성불했으니 법문을 들으러 오시오.”

산중의 모든 대중을 모아 놓고 계현 법사는 상좌에게 절을 하고 법문을 청하였다. 그러자 신찬 스님은 서슴치 않고 상당하여 설법하였다.

 

 

“신령한 광명이 홀로 드러나서 (靈光獨露 영광독로)

육근육진의 모든 분별을 벗어났네. (逈脫根塵 형탈근진)

그 자체가 항상 참됨을 드러내어 (體露眞常 체로진상)

언어 문자에 걸리지 않는다. (不拘文字 불구문자)

진성은 더럽혀지지 않고 (眞性無染 진성무염)

본래부터 원만히 성취되어 있네. (本自圓成 본자원성)

다만 허망한 인연만 떨쳐 버려라. (但離妄緣 단리망연)

곧 그대가 부처이니라.” (卽汝如佛 즉여여불)

 

 

그리고서 주장자를 두드리자, 계현 법사는 크게 발심하여 다시 절을 하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내 이렇게 늙어서 상좌에게 극치 법문을 들을 줄 기대나 했겠는가?

모두 부처님의 은혜로구나.”

 

 

모름지기 수행자는 그래야 한다. 태어남의 선후나 머리 깎은 선후는 평시에 차례를 정하기 위함이지, 도의 앞뒤를 가리는 것은 아니다. 부처보다 나이 많은 제자가 있었음이 같은 소식이다.

부처님께서는 「법화경」에서 一切衆生 悉有佛性(일체중생 실유불성)이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중생은 이미 부처의 본성을 완전하게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본성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외상과 주변에만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에 알지 못할 뿐입니다.

생선을 동여맨 새끼줄에서는 생선 비린내가 나고, 향을 싼 종이에서는 향내가 납니다. 불자님들도 마음 닦는 수행과 정진을 열심히 하시어 행복한 나날 되시길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오.

 

                                                     금용 대불모 불사도량   부용사   현산  지관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