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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지관 2011. 7. 11. 20:01

원효(元曉. 617년 ~ 686년)스님은  신라 진평왕 39년 압량군 불지촌이라고 하는 지금의 경산군 압량면 신월동에서 태어났는데, 태어날 때부터 여러 가지 신기한 상서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어머니가 그를 잉태할 때 유성이 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으며 낳을 때에는 오색의 구름이 땅을 덮었다고 한다.  아명인 서당(誓幢)의 당은 속어로 '털'이라는 뜻이며,  따라서 서당은 '새털'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는 그의 어머니가 그를 잉태하고 달이 찼을 때 집 근처의 밤나무 밑을 지나다가 갑자기 해산하게 되어 다급한 중에 남편의 털옷을 그 밤나무에 걸고 그 밑에 자리를 마련하여 아기를 낳은 데서 얻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원효스님은 열 살에 출가를 하여 천재성을 발휘했습니다.  출가한 뒤 스스로 첫새벽[始旦]을 뜻하는 원효라고 이름 지었다.  멀쩡한 스승은 없었다고 전해집니다만, 그 당시 유명한 큰스님과 학자들을 찾아다니면서 공부를 많이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34세(650년)에 당나라 현장(玄奘. 602년 ~ 664년)에게 유식학(唯識學)을 배우려고 유학을 가는데 의상(義湘. 625년 ~ 702년)스님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서 요동까지 갔다가 그때 국경수비대[순라군]에 붙들려서 되돌아 왔습니다.  그 후 한 10년 쯤 국내서 공부하시다가 마흔 다섯 살 나이에 다시 의상스님과 당나라 유학의 길에 나섰습니다.  그때는 해로로 가기로 작정을 하고 백제 땅이었던 당주계(唐州界 = 당항성, 黨項城)라고 하는 곳에 도달하는데 항구에 당도했을 때, 날이 너무나 어둡고 비바람도 치고 해서 어느 움막[土龕,토감] 같은데 들어가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자다가 목이 말라 더듬더듬 일어나 손에 잡히는 대로 만져보니 바가지가 있고 거기에 물이 마침 담겨있어서 그 물을 아주 맛있게 마시고는 잠이 들었습니다.  비바람은 치고 날은 어둡고 혹시 순라군(巡邏軍)에게 잡혀서 십년 전처럼 다시 되돌아가야 할 그런 처지는 아닐까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 스님이 어두워질 때까지 여기저기 헤매다가 그곳에서 잠을 청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지치고 피곤한 몸이었겠습니까?

 

잠결에 하도 목이 말라 일어나서 손에 닿는 대로 그냥 더듬거려서 얻은 물 한 바가지를 아주 달게 마시고 잤는데 아침에 날이 밝은 뒤 자기가 마신 바가지물이 생각나서 다시 찾았더니 바가지가 아니라 해골이었습니다.  그 해골에는 아직도 물이 남아 있고 주변에는 시체도 있고 뼈도 있고 그래서 갑자기 놀라게 되었습니다.  지난밤에 마신 물이 벌써 소화되었을 법한 그런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만 구역질이 나고 크게 토했습니다.  토하다가 문득 깨닫기를 어찌하여 어제 저녁에는 물이라고 생각해서 참 달게 마셨고, 오늘 아침에는 같은 물인데도 불구하고 해골바가지에 담긴 썩은 물이라고 생각하니 이렇게 구역질이 나고 토해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되었는가!

이것이 도대체 무슨 도리인가?  그야말로 모든 것이 이 한 마음의 조작이다!

이렇게 해서 마음의 도리임을 깨달았습니다.

 

삼계(三界)가 오직 마음이고 만법(萬法)이 오직 인식의 작용일 뿐이다,  그러니 마음 밖에 다른 법이 도저히 있을 수 없구나,  마음 밖에 따로 법이 없다면 무엇 하러 이 고생을 하면서 당나라까지 가서 법을 구한단 말인가?

그 어떤 법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심생즉종종법생(心生則種種法生)하고 심멸즉종종법멸(心滅則種種法滅)이라.”

‘내 마음이 생기면 온갖 법, 범부의 법이든 성인의 법이든 일체 법이 다 내 마음에서 나고, 내 마음에서 그것이 잦아들면 어떤 법도 다 소멸한다.’

 

어떤 이치, 어떤 좋은 것도 다 사라지게 되어 있다고 하는 그런 이치를 그야말로 통절하게 깨닫고는 그 길로 당나라 유학 가는 길을 포기했습니다.

그는 "또 무엇을 구하고 어디에 가서 무엇을 배운단 말인가.  신라에 없는 진리가 당에는 있으며 당에 있는 진리가 신라에는 없겠는가" 하여 더 이상 입당 유학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곧바로 되돌아와 이후 저술과 대중교화에 몰두했다.

원효스님은 유학 가는 길에서 그런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금용 대불모 불사도량  부용사  현산 지관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