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언제 닥쳐와도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죽음은 도대체 무엇인가? 원숭이가 죽은 새끼를 버리지 못하고 품에 안고 다니듯이 죽음에 직면하고서조차도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울부짖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일상처럼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사찰법당 좌우측면에 <빈두루위왕설법경>에 나오는 안수정등(岸樹井藤)벽화가 그려지곤 하는데, 인생의 무상함을 일깨워주는 이야기입니다.
망망한 광야에 한사람이 길을 가는데 뒤에서 무서운 코끼리가 나타나 그를 쫓아오고 있었다. 생사를 눈앞에 두고 정신없이 달아나다 보니 언덕 밑에 우물이 있는데, 등나무 덩굴이 그 속으로 늘어져 있었다. 그 사람은 등나무 덩굴을 붙들고 우물 속으로 내려갔다. 겨우 숨을 돌려 아래를 내려다보니 우물 밑에는 독룡(毒龍)이 입을 벌리고 쳐다보고 있었고 우물 중턱 사방에는 네 마리의 뱀이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등나무 덩굴을 생명줄로 삼아 공중에 매달려 있자니 두 팔은 아파서 빠질 것만 같았다. 설상가상으로 매달려 있는 그 등나무 위에는 흰쥐와 검은 쥐 두 마리가 나타나 그 등나무 덩굴을 갈고 있지 않는가! 그 경황 중에 얼핏 머리를 들어 위를 쳐다보니 등나무 위에 있는 벌집 속에서 달콤한 꿀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져 입 속으로 들어왔다. 그 사람은 꿀을 받아먹는 동안에 자기의 위태로운 처지도 모두 잊고 황홀경에 도취되어 버렸다.
이는 인생을 묘사한 부처님의 비유로서 ‘한 사람’이란 생사고해를 헤매는 모든 중생들의 고독한 모습을 말한 것이요, 망망한 광야는 중생이 지은 바 업(業)에 따라 윤회한다는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하늘의 여섯 세계(六道)이며, 쫓아오는 코끼리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홀연히 목숨을 앗아가는 살귀(殺鬼)요, 우물은 이 세상이고, 독룡은 지옥입니다. 네 마리의 뱀은 이 몸의 네 가지 구성요소인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사대(四大)이며, 등나무는 괴로움의 결실을 맺는 중생의 어리석음(無明)입니다. 등나무 덩굴은 사람의 생명줄이고, 흰쥐와 검은 쥐는 일월(日月)이 교차하는 낮과 밤이며, 벌집 속의 꿀은 눈앞의 오욕락(五欲樂)을 말한 것이니, 재물, 색(色), 음식, 잠, 명예욕입니다.
이 이야기는 죽음에 직면하고도 욕망에 사로잡혀서 세월을 낭비하는 우리들의 어리석은 모습을 비유한 이야기입니다. 급박한 상황에 놓여있으면서도 중생들은 그 꿀 한 방울에 애착하여 무상하고 위태로운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불기 2552년 부처님 열반재일을 맞이하여 무상한 세월을 똑바로 직시하고 언제 죽음을 맞이하여도 여유롭고 당당할 수 있는 초탈의 삶을 살도록 다짐해 봅니다. ‘今日(금일) 夕矣(석의)라 頗行朝哉(파행조재)인저’ ‘아침인가 하면 벌써 저녁이고, 소년인가 하면 이미 노년에 이르니 불자들은 이 두려움을 알아 촌음을 아껴 정진하라’는 원효스님의 당부에 화답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_()_
백화도량 부용사 玄山堂 志寬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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